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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판결 VS 판결 (김용국, 2015)

넷볼러 2018.01.25 18:33 Views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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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VS 판결, 김용국, 개마고원, 2015, 14,000원.

 

 

아들이 속초에 다녀오면서 사온 닭강정을 먹고 탈이 나 3일째 설사를 하고 있다. 원래 찬 음식을 먹으면 탈이 잘 나는 편이라 맥주를 마실 때마다 조심하곤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닭강정을 먹고 설사를 하다니. 그것도 몇 일째. 그동안 맥주 마시고 설사한 적은 있어도 찬음식을 먹고 탈이 난 적은 없는데 이번이 처음이다.

 

속초에 가본 사람들은 안다. 속소시내 길거리에는 ‘만석 닭강정’이라는 걸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우리나라 닭강정 분야를 평정한 상품이다. 실제 나도 속초에 가서 보았더니 이건 가게 수준이 아니라 큰 공장을 차리고 기업수준으로 하는 먹거리였다.

 

토요일에 친구들과 속초에 갔던 아들놈이 일요일에 집으로 출발하면서 닭정을 사오겠다고 돈 좀 보내달라고 할 때만해도 기대가 컸다. 오랜만에 ‘만석 닭강정을 먹는구나’라고. 나와 와이프는 저녁까지 굶고 있다가 강정이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겁지겁 먹었다. 보통 닭강정은 차갑게 식으면 딱딱하게 굳고 맛도 떨어지는데 만석 닭강정은 차가와도 맛이 있다.

 

이날 사온 닭강정은 겨울 바람을 맞고 배달와서 와서 그런 지 매우 차가왔다. 그래도 맛있게 먹은 거 까지는 좋았다. 그동안 술을 너무 먹어 술은 안먹으려 했으나 집사람이 한잔만 딱 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하는 바람에 맥주도 한모글 들이키면서.......

 

그것이 탈이 난 것이다. 그날 잠들기 전에 몸이 좀 이상한 거 같더니 다음날 아침부터 몸이 무겁고 설사를 계속해댔다. 같이 먹은 집사람도 함께 그랬다면 음식이 상한 것을 의심할 텐데 나만 그러니 그런 것도 아니고, 참 음식이 급히 들어가면서 탈이 난 것이 분명했다. 이후 4일째 내리 설사를 하고 있다. 마침 방학이고 약속도 없어 집에서 나갈 일도 없으니 집에서 편안히 설사를(?) 하면서 그동안 밀린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얼마전에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지 못했던 이 책도 다시 집어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릴 때는 사서가 아이들이 많이 보는 책이니 빨리 보고 반납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방학이라 아직 반납을 못하고 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이 대부분 중고생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책은 성인도 충분히 읽을만하고 저자의 정치적인 견해까지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법원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람이다. 법원의 판례에 쉽게 접근이 가능한 일을 하기에 이런 책을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에는 시국사건이나 정치적인 사건까지 여러 개 담아 놓았는데 그 내용이 운영자의 생각과 비슷하다. 심지어 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채 기술하지 못하고 있다는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의 후반부에 노조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읽으면서 민주노총 한상균위원장 생각이 들었다. 그는 쌍용자동차에 근무하면서 노조활동을 시작하여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주도하였고, 민주노총위원장까지 하다가 2015년 박근혜정권에게 잡혀 촛불집회가 시작되기 몇 달 전인 2016년 7월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이다. 그의 죄목은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벌과 가진 자들의 편에 있던 정권과 판검사들이 한 짓이다.

 

촛불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으니 이제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적폐청산’이라는 구호아래 MB를 잡기위한 검찰의 작업(?)이 매일같이 보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과거정권에 의해 피해를 봤던 사람들을 구제하고 원상복귀시키는 일이 또하나의 할 일 이라고 본다.

 

 

(101)

사실 누군가 마음대로 재단하고 예측하여 생명을 포기한다면 그건 위험한 일이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진단은 오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를 기계에 의존하여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평소 연명장치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힌 환자라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 열풍이 번진 바 있지만 이제는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려는 웰다잉(well-dying)에도 관심을 가질 시기가 되었다. 앞서 소개한 박진석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아름답게 인생을 마감하는 일을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미뤄서는 곤란하다. 말기암 환자가 통증과 심리적 고통을 덜고 가족들도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절실하다. 법원이 매번 답을 내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사안이다. 어떻게 품위있게 죽을 것인가,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좋은 방안을 고민할 때다.

 

(102)

1년에 1만 4427명, 하루 평균 약 40명. 대한민국의 자살 사망자 수치(2013년 통계청 기준)

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는데 2013년 현재 10만 명당 자살자수는 28.5명이다. 전체 사망원인 가운데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에 이어 자살이 4번째를 차지했는데,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처럼 자살률이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경제적 어려움, 사회안전망의 미비, 공동체의 해체, 가족 붕괴......., 자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한두 가지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자살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한국이 지금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 함께 나누는 사회였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안타까운 죽음도 적지 않다.

 

(146)

한국 노사간의 분쟁은 한 치 양보도 없이 대법원 판결까지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양쪽 모두에게 상처가 되지만 결국 치명타를 입는 건 노동자쪽이다. 사측은 재판에서 지더라도 회사돈으로 손해배상금 물어주면 그만이고, 복직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다르다. 승패에 생존이 걸려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지면 벼랑 끝에 몰린다. 감당할 수 없는 돈을 물어주거나 인생을 망치거나 혹은 감옥에 가거나. 그러나 법정에서 노동자가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KTX 여승무원 재판도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159-161)

2007년엔 유명한 폭행사건의 가해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차남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 난 김회장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직접 쇠파이프를 들고 보복에 나섰다. 이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이때도 수감생활은 길지 않았다. 그에겐 항소심과 든든한 변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9명이나 되는데도 항소심은 ‘중상을 입은 사람이 없고 모두가 합의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폭력전과가 없고 반성한 점도 높이 샀다. 그뿐 아니다. 심지어 재판부는 “아버지로서 부성이 앞선 나머지 사리 분별력을 잃고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김회장의 심경을 헤아려주기까지 한다. 해외부동산 불법 구입, 불법 정치자금 제공, 아들 보복 쇠파이프 폭행, 탈세에 배임까지 저력이 화려한 그에게 법은 참으로 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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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경향신문> (7월 22일자 ‘경향쌀롱’)에는 죄수가 신세타령을 하며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푹 내어 쉽니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1964년 <동아일보> 1면 칼럼의 제목은 ‘무전은 유죄 유전은 무죄’였다. - - -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온 건 적어도 60년은 넘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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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의 양형을 범죄액수에 따라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빈자와 부자를 상징할 만한 두 사람의 재판 결과는 너무도 달랐다. 한 사람은 수십만원 정도의 절도를 반복해서 14년간 징역을 산 반면, 또 한사람은 사회적 물의를 빚은 큰 죄를 거듭 저지르고도 실형을 피해갔으니 말이다. - - - 무직자의 15만원 절도에는 징역 3년이, 재벌회장의 1500억대 배임에는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현실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7)

2008년 시작된 국민참여재판은 시범실시 단계를 거쳐 재판대상을 확대하고 배심원 평결을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법무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하려 하는 등 오히려 배심원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쪽으로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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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판이 고도의 법률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실관계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취지가 기존의 사법제도에 대한 불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민감한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법원에 대한 불신 해소와 공정한 형사재판의 정착을 위해서는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더 확대해야 한다.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배심원들의 평결과 법원의 판결 일치도는 90% 이상이었다. 선거법 위반 등 이른바 정치적인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21-223)

“1972. 12. 27.에 개정·공포한 대한민국 헌법(유신헌법)이 무효라고 보아야 할 근거는 없고, 대통령의 판단결과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경우 그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나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아니한 이상 당연무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며 그 계엄선포의 당, 부당을 판단할 권한은 사법부에는 없다.”

즉 신군부가 계엄을 선포하고 12·12사태 등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행위가 정당한 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권한 밖이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 해석하며, 정권을 잡은 사람이 그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건 인권을 탄압했건 형식적인 재판절차를 갖추어서 법정에 오면 대법원은 모른 척 해주겠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당시 시대가 그랬기 때문에 사법부도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이로써 관련자들이 연행된 지250여 일 만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법적 판단은 모두 끝이 났다.

그런데 사형이 확정된 바로 그날, 전두환 정권은 이례적으로 감형조치를 발표한다. - - - 김대중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던 김대중은 1982년 12월 22일 석방된다. 이날 언론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의 인도주의적 결단”이라는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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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히 달라졌다. 우선 12·12사태를 ‘군사반란’으로, 전두환을 ‘내란수괴’로 규정한다. 그뿐 아니다. 신군부의 계엄선포 등에 대해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행위이므로 적법성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던 사법부는 어느새 ‘헌정질서의 파괴범죄’로 단죄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그러면 ‘내란음모 주동자’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법부는 “피고인(김대중)의 행위는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파괴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형법 제 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범죄로 되지 아니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2004년의 사법부는 김대중의 ‘내란음모’에 대해 ‘헌정질서 수호’로 평가를 바꾼다.

 

(224)

지금은 변호사가 된 한 퇴직판사가 현직에 있을 때 항상 하던 말이 있다. “지연된 정의믐 부인된 정의다”판사가 ‘바로 지금’ 자신의 소신대로 판결을 하지 못한다면 정의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이 표현을 빌린다면 김대중 내란음모 무죄판결도 혹시 “지연된 정의”는 아니었을까.

 

(228-229)

이로써 2013년 내란음모사건은 ‘내란음모 없는 선동사건’으로 끝이 났다. 대법관 3명은 “선동에 따라 내란이 실행될 실질적 위험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내란선동은 무죄라는 소수의견을 피력했으나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 의원이 체제전복을 선동하고 참석자들이 이에 동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직의 실체가 불확실하고 참석자들이 내란 실행에 합의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조직(RO)은 없고 선동만 있었다는 뜻이다.

 

원점에서 다리 돌아보자. 이 사건에서 유죄의 주된 증거는 5월 10일과 12일 모임 녹취파일과 증인들의 증언이다. 더 추가하자면 압수수색으로 얻은 USB와 파일 등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확인된 발언 내용만으로 국가를 폭력으로 전복할 위험을 판단한 것은 아직도 논란이 많다. 이 때문에 이 사건도 멀지않은 미래에 뒤집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인권기구인 국제엠네스티는 대법원이 내란선동 유죄판결을 확정하자 “매우 유감을 표한다”며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점점 더 강화되어왔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런 걱정스러운 경향이 한층 더 악화되었다”고 논평했다.

 

수사기관이 언론을 통해 공개한 이석기 의원의 ‘회합 발언’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임과 발언 등이 국정원이 처음 발표한 것처럼 국가를 전복할 만큼 위험한 것이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건 사법부의 몫이다. 정부와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달라야 한다. 법원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판결을 내리면 불행한 결과가 나온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법원이 과거에 ‘피고인 김대중’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으며, 정권이 바뀐 뒤 그것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생각해보라.

 

(252-253)

미네르바는 무죄판결을 받고 104일 만에 풀려난다. 판결에 불복, 검사가 항소하지만 처벌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마저 위헌이 되자 곧바로 항소를 취하한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12월 28일 이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표현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법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 중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났다.

수사기관은 미네르바의 수많은 글 중 단 두 편만을 문제 삼았고, 홍씨 역시 SNS글 한 편과 방송인터뷰 하나로 전격 구속되었다. 결국 둘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100여 일이나 옥고를 겪어야 했고 네티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법이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세월호 해경 명예훼손 사건에서 법원은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기관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정부나 수사기관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264)

2010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제 이때는 다른 결론이 났다. 조전혁 의원이 시사개그맨 노정렬씨를 고소한 사건이다. 노씨는 어느 집회에 초대받아 가서 조 의원을 풍자했다. 누군가 명예훼손이 걱정된다고 하자 노씨는 “훼손될 명예가 없는 개나 짐승, 소 한테는 명예훼손이 안 된다”고 답변했다. 발끈한 조 의원은 고소로 대응했다.

법원은 사람을 동물에 빗댄 건 풍자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보아 유죄판결을 내렸다. 1심은 모욕죄를 인정, 벌금 50만원 형을 선고했다. 그나마 항소심은 형이 너무 무겁다며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시사개그맨이 풍자수위를 고민해야 한다면 그건 불행한 일이다. 개그맨에게 ‘정당한 풍자’와 ‘모욕’을 구분하라는 요구는 개그 아닌 다큐를 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판결 결론을 떠나 나랏일에 바쁜 국회의원이 수사기관에 권리구제를 호소하는 일은 모양 빠진다. 시민 개인의 발언을 문제삼아 고소장을 접수하고 법정에서 유무죄를 따지는 현실이 왠지 달갑지는 않다. 그것도 국회의원의 권리라고 하기엔 궁색하지 않은가.

 

(268-271)

일제 강점기에 판사로 일하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재판에서 수십 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행위는 친일행위일까. 아닐까. 2010년 10월 서울행정법원(제3부 재판장 김종필)은 친일이 아니라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판에 관여하였다거나 단순히 일자의 훈공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친일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 정도로는 “일제에 현저히 협력”했거나 독립운동가들의 “탄압에 적극 압장 선”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 - -

법원은 ‘현저히’와 ‘적극’에 방점을 찍었다. 항일인사들을 직접 고문·학대한 증거나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했다는 증거나 없으니 고인에게 친일의 딱지를 붙일 수 없다는 말이다. 판사로서 당시 법에 따라 성실히 판결한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했어야 친일로 인정될까? “불법으로 영장을 날인하여 부당한 신체구속을 당하도록 하였다거나 자백을 강요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단다.

 

이 판결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4년 6개월 동안 자료조사와 이해관계인의 의견 조회와 이의신청을 거쳐 발표한 결정을 뒤집었다. 법원의 기준대로라면 일제 강점기에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친일 인사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제 강점기에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단 순사를 택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였고 자백을 받기위해 고문과 가혹행위를 일삼아야 했다. 반면 판사·검사·고위관료 등 고위직 인사들은 손에 피묻힐 일이 없었다. 법정에 오기전에 ‘아랫것’들이 알아서 미리 다 자백을 받아놓았으니까. 그러면 직접 고문한 말단 순사에게만 친일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 일일까. 판결은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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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판사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딱지를 붙이는 건 좀 억울하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똑같이 판사로 일했다고 해도, 독립운동가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우호적으로 대한 판사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다. 단순히 판사여서가 아니라 판사로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친일판정의 핵심일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법률가였던 박상진(1884-1921) 선생의 삶을 보자. 선생은 경술국치가 일어난 1910년 최초로 실시한 판사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발령이 났으나 임용을 거부했다. 대신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가 1919년 공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21년 순국했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을 처벌하는 데 긴밀히 관여한 판사가 있는가 하면, 일제의 판사가 되지 않겠다며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목숨을 잃은 법률가도 있다.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마저 차이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281)

이제 파업 손배소는 더 이상 ‘신종’ 노동탄압이 아니다. 노사관계에서 일상이 됐다.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억대 손배소는 노조에겐 해고와 감옥보다 무서운 존재가 돼버렸고, 사측에게는 파업과 노조활동을 막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289-291)

즉 (1) 주체 (2) 목적 (절차) (4) 방법이 모두 정당해야 합법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1) 단체교섭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자(단체협약능력이 있는 노동조합) (2) 근로조건의 향상을 목적으로 (3)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하였을 때 조합원의 찬성결정 등 절차를 거쳐서 (4)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하나라도 어기면 불법이 되고 노동조합이나 파업참가자들은 거액의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예를들어 회사가 임금협상이나 단체교섭을 거부하자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노조가 공장점거를 했다면 불법이 된다. 현행판례에 따르면 ‘(4)방법’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 회사가 수백 명, 수천 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결정한 사안을 반대하며 파업을 벌여도 역시 불법이 된다. ‘(2) 목적’이 정당하지 않아서다. 법원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은 경영상 판단이기 때문에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정리해고를 근로조건 개선과 관계없는 사안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현행 판례대로라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은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행위라서 합법이지만, 근로자격을 아예 박탈하는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은 불법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 파업이 불법이 된 까닭도 그래서다.

법원이 목적의 정당성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다. 실제로 합법 파업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 민영화 반대나 한미 FTA 반대, 노동법 개악반대 등 공공성과 관련된 파업도 한국에선 모조리 불법파업으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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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헌법상 권리인 노동권과 경영권이 충돌할 때 십중팔구 경영권의 손을 들어준다. 판례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파업=불법’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 개선을 하면 귀족노조의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되고, 민영화 반대 등 공공성을 목표로 내걸면 그것대로 불법파업이 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만 죽어가고 있다.

파업은 자제해야 할 일인가? 아니다 ‘감수해야 할 손해’다. 이건 노조의 주장이 아니다. 이미 1977년 법원에서 내린 판결이다.

 

단체행동권의 행사란 근로계약상 근로의무 있는 경우에 그 근로의무의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를 시민법의 원리에서 본다면 위법인 행위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이를 허용한 이유는 노동력을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하고 있는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행해지는 한 사용자는 근로자들의 위 위법된 행위를 용인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헌법에 규정하여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다.(대법원 1979. 3. 13. 선고 76도 3657판결)

 

 

-| 머리말 | 판결, ‘최상’과 ‘최선’ 사이에서

 

1부 판결은 완벽할 수 없다

 

정당방위,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도둑 폭행 사망 VS 폭력남편 의식불명

 

법대로만 하면 정의가 실현될까

서울역 노숙자 방치 사망 VS 공공임대주택 노인 퇴거

 

용의자는 있는데 증거가 없다

산낙지 질식 사망사건 VS 시체 없는 살인사건

 

성폭행이냐 화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이트클럽 부킹 원나잇 VS 윗집 아랫집 주거침입 강간

 

미성년자와의 잠자리, 사랑인가 범죄인가

40대 남성과 여중생의 동거 VS 양부와의 강압 없는 성관계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재판하다

뇌암 말기 아버지 살인 VS 세브란스 병원 존엄사

 

자살로 내몰린 사람들

아파트 경비원 자살 VS 왕따 중학생 자살

 

2부 재판대에 오른 판결

 

강기훈, 24년 만의 무죄

1991년 유서대필 유죄 VS 2015년 재심 무죄

 

KTX 여승무원, 10년 법정 싸움의 종착점

하급심 복직 승소 VS 대법원 복직 패소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존재하는가

무직자의 15만 원 절도 VS 재벌회장의 1500억대 배임

 

회장님의 하루 일당은 5억 원

일당 5억 원 ‘황제노역’ VS 일당 5만 원 ‘평민노역’

 

검사,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다

벤츠는‘청탁 대가’다 VS 벤츠는‘사랑의 정표’다

 

국민참여재판, 상식과 전문적 식견 사이

배심원 평결 번복 VS 배심원 평결 존중

 

3부 법정 안의 사회

 

국가의 폭력을 단죄하라

소록도 한센인 강제단종 VS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폭행

 

내란음모, 김대중과 이석기 사이

김대중 내란음모 VS 이석기 내란음모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낙인, 종북

‘종북 지자체장 퇴출’ 주장 VS ‘이정희 부부 종북’ 매도

 

정부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세월호 홍가혜 사건 VS 미네르바 사건

 

정치인의 모욕, 일반인의 모욕

강용석 여자 아나운서 모욕 VS 네티즌의 ‘누구신지호’ 모욕

 

법은 친일파 기득권을 인정할까

친일판사 결정 취소 VS 친일재산 찾기

 

한국에서 합법 파업은 가능한가

한진중공업 파업 VS 쌍용자동차 파업

 

-사건번호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310 축구철학의 역사 (조나단 윌슨) file 넷볼러 2018.02.05 42
» 판결 VS 판결 (김용국, 2015) file 넷볼러 2018.01.25 23
308 대논쟁 철학배틀 (하타케야마 소, 2017) file 넷볼러 2018.01.25 17
307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클라우스 슈밥, 2016) file 넷볼러 2017.12.24 42
306 피로사회와 스포츠 (이홍구, 2017) file 넷볼러 2017.12.22 38
305 수의 신비 (마르크 알랭 우아크냉, 2006) file 넷볼러 2017.11.29 12
304 착각의 심리학 (데이비드 맥레이니, 2012) file 넷볼러 2017.10.22 44
303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file 넷볼러 2017.10.06 57
302 아주 작은 반복의 힘 (로버트 마우어, 2016) file 넷볼러 2017.08.31 55
301 왜 세계화가 문제일까? (게르트 슈나이더, 2013) file 넷볼러 2017.08.24 15
300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김대식, 2017) file 넷볼러 2017.08.24 54
299 승부욕 (요세프 라이히홀프, 2004) file 넷볼러 2017.08.08 28
298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2015) file 넷볼러 2017.06.29 63
297 자존감 수업 (윤홍균, 2016) file 넷볼러 2017.06.13 68
296 춤추는 전쟁 (양순창, 2014) file 넷볼러 2017.05.21 28
295 운동장의 마술사 체육교사 수업을 말하다 (전용진, 2015) file 넷볼러 2017.03.06 317
294 예수와 붓다의 만남 (김대원. 2016) file 넷볼러 2017.01.29 41
293 배 이야기 (헨드릭 빌럼 반 룬, 이덕열) file 넷볼러 2017.01.26 23
292 구글노믹스 (제프 자비스, 2010) file 넷볼러 2017.01.08 13
291 지금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 앨버트 잭, 2016. file 넷볼러 2016.12.2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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