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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식플러스, 2014, 25,000원.

 

 

고교시절 나는 문과임에도 물리, 화학을 배웠다. 추측컨대 당시 교육과정은 문과라도 이과과목인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두 개를 배워야했고 이 중 한 과목을 선택해서 학력고사를 치루어야 했던 것 같다. 내가 다닌 숭문고등학교는 당시 고3 문과반에 물리, 화학 두 과목을 가르쳤고, 덕분에 나는 물리, 화학을 배울 수 있었다. 이과반은 잘 모르겠으나 아마 정치경제, 사회문화, 국토지리, 세계사에서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이과반은 물리와 화학 이외에 필수로 생물과 지구과학까지 다 배웠다.

 

그런데 문과반이었던 우리반의 물리, 화학 두 과목의 수업광경이 가관이었다. 학생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학력고사를 치루었기 때문에 선택한 과목은 열심히 들었으나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다른 과목 공부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던 것이다.

 

나는 물리를 선택했다. 따라서 물리 시간은 집중해서 들었고 화학시간은 듣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냈다. 물론 화학을 선택한 애들은 나와 반대였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반에는 물리를 선택한 학생이 나와 다른 애 둘이었다는 것이다. 화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반에서는 물리를 선택한 2명만 물리시간에 집중했고 화학을 선택한 애들은 전부 엎어져 잤다. 수십 명이 엎어져 자고 있고 2명만 수업을 듣는 반에서 수업하는 물리선생님은 기분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물리와 화학을 각각 선택한 아이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의 경우 물리는 화학보다 공부하기가 편했던 기억이 난다. 물리는 원리와 맥락을 알면 공부하기가 수월하게 느껴졌다. 이에반해 화학은 온통 외워야하는 과목이었다. 장시간의 공부가 쌓여야 점수가 나오는 과목이 물리였던 반면 화학은 단시간에 암기해서 시험을 치루기 유리한 과목이었다. 나에게는 물리가 적성에 맞았다.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암기해서 수업을 보는 화학이 안맞았던 것 같다. 화학을 선택한 친구들은 시험기간에 집중적으로 암기해서 시험을 치루기 편한 화학이 좋다고 했다.

 

어쨌든 이런 경험 때문에 화학보다는 물리에 대해 더 친숙하고 이해가 더 많은 것이 나의 과학적 지식이다. 그런데 이번에 본 장학석의 책은 화학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덕분에 산소, 물(H₂O), 전기화학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룬 2부는 힘겹게(?) 책장을 넘겼다. 다만 물의 비등점에 대한 내용은 그런대로 재미있게 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에 건너가서 학문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과학을 대하는 철학적 태도는 현재 갈등이 일상화된 우리사회에 해결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3부에서 그가 강조하는 ‘다원주의’가 그것이다. 다시말해 그가 이야기하는 과학에서의 다원주의 방식은 어쩌면 우리사회에 만연한 획일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좀더 구체적으로, 412쪽에서 서술한 다원주의에 기초한 삶의 방식은, 일류대를 위해 입시에 전념하는 우리시대의 학생과 부모들에게, 반공과 자유라는 이념을 맹신하며 나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몰살하기를 바라는 세력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분명한 제안이다.

 

 

(34)

그런 경험을 통해 포퍼는 ‘반증주의 철학이론’을 세웁니다. 포퍼가 말하는 반증은 경험적 증거로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이론에 기반을 두고 예측했는데, 관측이나 실험을 해보니 결과가 예측과 달리 나오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럴 경우 당연히 이론이 틀렸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간단하고도 피할 수 없어 보이는 반증의 논리를 포퍼는 과학의 가장 기본으로 보았고, 또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뭔가를 확실히 배우는 방법은 반증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장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이론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는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고 해도, 앞으로 나올 관측이나 실험결과도 만족시킨다는 보장이 없지요. 그래서 포퍼는 확실한 것은 반증밖에 없다고 했고, 또 반증을 통해 잘못된 이론을 버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이 진보하는 기본형식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은 끝없는 ‘추측과 반증’의 과정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추측이란 확실하지 않은 가설을 제외한다는 의미입니다.

더 폭넓게 이야기하자면 포퍼는 과학적 태도란 곧 비판적 태도라고 했습니다. 종교나 정신분석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등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대해서 비판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할 뿐, 발전과 향상이 없습니다.

 

(130)

자연에 신비로운 숨은 힘이 내재해있고,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작용으로 지구와 태양이 서로를 끌어들인다는 말은 비과학적이라고 거부한 것입니다. 이 원격작용 문제는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중요한 쟁점으로 논의되었습니다. 2장에서 논의했듯 갈릴레오가 어떻게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길 수 있느냐며 케플러의 조수이론에 반대했을 때와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이 예를 보면, 같은 과학분야에서도 패러다임이 다르면 어떤 것이 훌륭한 지식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뉴튼역학 패러다임의 기준으로는, 정확히 개념을 정리해서 단순한 법칙을 세우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여 공식을 푸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렇게 해서 계산해낸 내용이 관측과 일치하면 된 것이고, 더 이상 ‘깊은’ 설명 같은 것은 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반면 데카르트의 역학 패러다임에서는 자연현상이 어떤 작동원리로 일어나는지를 말해주는 기계적인 설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학으로 풀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그것이 주목적은 아닙니다. 이렇게 판단기준이 달라져버리니까 모두를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를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134)

이것이 비정합성의 제1차원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어느 패러다임이 더 우수한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바뀌어버립니다. 우리 일상생활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면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뭐가 이리 빨리 안 되나’하는 것이죠.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영국 등에 가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외식을 하면, 비싼 식당일수록 음식을 굉장히 늦게 가져옵니다. 너무 빨리 가져오면 손님들도 의아해합니다. 비싼 돈 주고 기분 내면서 외식을 즐기고 있는데 빨리 먹고 나가버리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나는 우리나라가 제일이야’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기준대로 잘 만들어서 살고, 저 나라는 자기네 기준으로 잘 만들어서 사는데 서로를 보고 불쌍하게 여깁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프랑스 사람들이 영국에 오면 음식이 맛없어서 고생합니다. 그런데 영국사람들은 음식 맛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예가 아주 많습니다. 기준이 서로 다를 때 누가 더 우월한지 객관적 판단이 안 된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는 잘 알고 있지만......

 

(137-139)

쿤이 들어준 중요한 예를 또 두 가지만 짤막하게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는 질량입니다. 질량은 뉴튼역학 패러다임에서는 각 물체가 지닌 고유의 상수인 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패러다임에서는 물체의 물체의 운동속도에 따라 바뀌는 변수고,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변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공식만 볼 때는 두 패러다임에서 부여하는 질량의 수치가 그 질량을 가진 물체의 속도가 낮을 경우에는 비슷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뉴튼과 아인슈타인의 질량개념이 그렇게 혁명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에 반해 쿡은 수치는 근사할지언정 그 개념의 깊은 의미는 정혀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한 예는 ‘운동’ 개념입니다. 아리스토렐레스는 위치 이동뿐아니라 모든 상태의 변화를 다 운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쿤이 회고하기를, 이런 식으로 이제는 의미가 바뀌어버린 개념들 때문에 자신이 처음 아리스터텔레스 책을 읽었을 때 전혀 이해가 안됐다고 했습니다. 이런 위대한 철학자가 애 물리학이나 천문학에서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했을까. 끙끙거리고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깨닫고 보니 자신이 기본개념의 의미를 현대식으로 잘못 해석하여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본적 개념의 의미가 다르면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간단하게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 - -

신성이란, 원래 아주 멀어서 지구에서 보이지 않던 별이 엄청난 엄청난 포갈로 확 밝아지면서 갑자기 우리에게 새로이 보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중 규모가 큰 것은 초신성이라 합니다. 그런데 옛날 유럽의 천문학 기록을 보면 초신성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 반면 동시대 중국의 기록에는 많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2장에서 살펴보았듯,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체계에 따라 달부터 그 위로 천상에 있는 것들은 다 완벽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완벽하기 때문에 변하는 것도 없고, 새로 생기거나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성같은 것을 보았을 때, 달 밑쪽에 있는 대기 안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으로 처리해버리고 천문기록에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혜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천계의 불변성 개념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반대로 하늘에서 자꾸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새로운 별이 나오는 것을 두고 흉조니, 길조니 하며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새로운 별이 나오기만 하면 기를 쓰고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동서양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141)

쿤은 이 상황을 조금 과장해서 “혁명 이후의 과학자들은 아주 딴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까 좀 미안했는지, 적어도 그 비숫한 생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쿤도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해서 자연 자체가 변한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은 자연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패러다임은 우리 머릿 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세상’이라는 것은 패러다임을 통해서 걸러져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자연’ 그 자체를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관측을 통해 자연을 알게 되었는데 그 관측은 특정한 패러다임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지요.

 

(144)

보통 생각하듯 바보나 사기꾼 들이나 연금술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뉴튼도 연금술에 몰두했었습니다. 그 결과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뉴튼이 죽은 후에 보니 연금술 실험과 공부를 해서 써놓은 엄청난 양의 기록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연금술이라는 패러다임 자체가 사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백년에 걸쳐 이루어놓은 실험결과나 이론적 논의 들이 폐기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연금술을 하는 사람들이 발견한 화학물질도, 실험기구나 기술도 근대과학에 보존된 것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전부 보존되지는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혁명이 일어날 때는 확실히 그전 패러다임에서 이룬 업적이 많이 유실될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패러다임이 지배적이 되면서 에테르에 관해 축적되었던 지식은 다 무효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주 정밀했던 실험도, 굉장히 발달했던 복잡한 이론도 그 의미나 중요성을 상실했습니다.

 

(159)

실재론자들의 직감에 대해 반프라센은 멋진 ‘진화론적’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반프라센은 캐나다 사람인데 미국에서 쭉 활동을 했고, 현재 전 세계에서 반실재론 철학자 중 제1인자로 꼽힙니다. 과학이 성공적이므로 실재론을 믿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면서, 반프라센은 과학의 성공은 생물이 성공적으로 진화한 것과 같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계속해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경험적으로 엄격히 시험해서 그중에 성공적인 것만 놓아두고 나머지는 다 없애버립니다. 그러니 살아남은 것은 당연히 성공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 결과만 보고 과학이 어떻게 이렇게 엄청나게 성공적인 이론만 만드느냐며 탄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습니다. 생물의 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특별한 기법이 있어서 잘 적응된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일어나는 돌연변이 중에서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은 살아남고 아닌 것은 죽어 없어질 뿐이라는 것이 다원주의 진화론입니다. 성공했다는 말 자체가 살아남았다는 뜻이고, 살아남은 것은 다 성공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63-164)

저는 인간이 진리를 갈구하는 것은 종교적 열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특히 일신교인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유럽인들이 과학을 처음으로 제대로 발전시켰을 때 가지고 있던 관념이 유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많은 유럽사람들은 현재의 우리 기준으로 보면 광신자들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유럽여행을 가본 독자들은 느꼈을 것이고, 안 가본 독자들도 사진만으로도 느꼈을 겁니다.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대성당들, 기가 막히게 조립한 그 거대한 석조건물들을 트럭도 없고 그레인도 없을 때 엄청난 비용을 들여 지었습니다. 그들은 짓다가 사고가 나서 죽어가면서도 몇 백 년씩 걸려서 대성당을 올려낸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가 권력도 교회가 좌지우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성전을 한답시고 중동까지 말 타고 가서 난동을 부리고, 기독교끼리도 종교전쟁을 해서 서로 죽이고, 종교재판을 해서 이단자를 고문하고 처형하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유럽의 과학적 문명이 더없이 훌륭하고 그렇기 때문에 저도 거기서 살고 있지만, 그 역사를 보면 엄청나게 경건하고 광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 - -

 

(207)

* 과학의 진보를 이야기할 때 흔히들 굳건한 토대 위에 지식을 쌓아간다는 ‘토대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니 그런 토대 노릇을 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기본지식이란 과학에서 찾아볼 수 없다.

* 거기 반하여 ‘정합주의’에 의하면 인간의 지식체계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은 지식이 확실한 토대 위에 쌓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식으로 여기는 모든 것들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 노이랏의 은유에 비하면, 지식은 물이 약간 새지만 떠다니는 배와 같다. 과학자들은 그 배를 타고 가면서 조금씩 고쳐서 더 짜임새 있고 물이 새지 않게 하는 수밖에 없다.

- 필자의 입장은 ‘진보적 정합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과학은 확실하지 않은 토대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연구를 통해 점진적으로 지식의 체계를 더 크게 늘려가고 더 정합성 있게 재구성할 수 있다.

 

(293)

왜 그릇에 따라 물이 끓는 온도가 다를까? 많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양은냄비 등은 측면에서 열손실이 많아서 그런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거품이 얼마나 잘 일어나는 지입니다. 거품이 형성될 때 물은 열을 크게 손실합니다. 액체상태의 물이 증기로 변할 때 많은 잠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끓고 있는 물은 계속 가열돼도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고 대략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열을 더 세게 넣어주면 더 많은 수의 거품이 형성되기 때문에 열의 평형이 유지되어 온도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거품 형성이 충분히 빨리 안 되면 열의 입력이 출력보다 높아서, 물 안에 열이 축적되어 온도가 올라갑니다.

 

(386)

이 당혹스러운 결과를 놓고 다들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은 그 고민을 거부하고, ‘광속은 무조건 불변하다’는 것을 전제로 특수상대성이론을 세우고, 에테르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보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자체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 결과를 보면 강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이클슨은 19세기 고전물리학을 굳게 믿었고, 그것을 더 정확하고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정밀한 측정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마이클슨-몰리 실험의 결과는 고전물리학을 엎어버리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마이클슨은 죽을 때까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탐탁찮게 여겼고, 계속 고전물리학이 훌륭하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마이클슨만 생각이 굳어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물리학의 대혁명이 20세기초에 일어나기 바로 전에 여러 훌륭한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의 굵직한 내용은 다 알려졌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다가 뒤통수를 크게 맞았습니다. 우리도 지금 현재 신봉하는 이론이 나중에 변할 리 없다고 믿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391-392)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워서 전 우주의 작동원리를 정립하고자 했던 뉴튼의 꿈은 20세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깨졌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훌륭한 뉴튼역학을 아주 팽개쳐버리겠습니까? 아닙니다. 일상생활 범위부터 태양계 정도 스케일까지는 뉴튼역학을 아직도 잘 쓰고 있습니다. 스케일이 아주 작아지면 양자역학을 쓰고, 아주 커지면 일반상대론을 씁니다. 속도가 높아지면 특수상대론을 씁니다.

 

(397-398)

요즘 길 찾는 내비게이션을 많이들 쓰지요. 그것은 정말 20세기 말기 과학의 기가 막힌 업적입니다. ‘전 지구 측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지구 주위에 많은 인공위성을 띄우고 거기서 원자시계를 돌리는 것이 기본구조입니다. 그런데 위성을 발사하고 조정하는 원리는 위에서 말했듯이, 아직도 뉴튼역학입니다. 그 반면 원자시계의 작동원리는 양자역학입니다. 게다가 그 원자시계는 상대성이론을 써서 수정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중력장 내에서의 그 시계 위치와 또 시계가 실려있는 위성의 운동속도에 따라 시계가 가는 속도가 달라지는데, 그것을 수정하려면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둘 다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융합된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운영되는 시스템으로부터 지구상 우리에게 현 위치를 가르쳐주는 신호가 내려옵니다.

 

(412)

다원주의는 사회 여러 방면에서 표출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목표가 동일하면 대다수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고, 그 많은 사람들이 실패자로 낙인찍혀 살아가는 불행한 사회가 됩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우리 각자가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특유한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서로 다른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한 종목에서 뒤떨어지는 것 같으면 종목을 바꾸라는 이야기입니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해야 효과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신이 나서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여러 갈래 길을 뚫고, 그러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궁금해하고 자극하는 다원화된 사회야말로 성숙하고 효율적인 사회입니다. 과학이 다원주의적이라면, 그런 훌륭한 사회를 이루어내는 데 물질적인 기여를 넘어서 정신적·철학적·정치적ㅇ니 기여를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서문 | 과학과 철학은 만나야 한다

 

PART 1 과학지식의 본질을 찾아서

 

1장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정말 그리도 훌륭한가

과학에는 특유한 방법이 있는가

포퍼: 반증주의와 비판적 사고

쿤: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정상과학

퍼즐 풀기

과학: 전통과 비판 사이

 

2장 지식의 한계

데카르트의 인식론적 절망

달 속의 토끼

관측의 이론적재성: 관측은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귀납의 문제

귀납의 방향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3장 자연의 수량화

과학에서 측정의 중요성

현대사회는 측정의 사회

과학적 업적으로서의 수량화

기준을 창조하는 어려움: 온도계의 예

다른 기초 물리량의 측정: 길이, 질량, 시간

인식과정의 반복

 

4장 과학혁명

과학혁명의 몇 가지 예

어떻게 과학에도 혁명이?

비정합성

과학혁명에 대한 논란

‘혁명적 진보’의 역설

 

5장 과학적 진리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가

관측 불가능의 세상

과학의 성적표

진리에 대한 열망

참된 것의 개념들

능동적 실재주의

이론과 실재의 관계

 

6장 과학의 진보

과학은 정말 진보하는가

기초 없이 짓는 건물

정합주의: 노이랏의 배

정합주의에 대한 불만?

진보적 정합주의

남은 두 가지 질문

 

PART 2 과학철학에 실천적 감각 더하기

 

7장 산소와 플로지스톤

화학에서 왜 혁명이?

나름대로 훌륭했던 플로지스톤 화학

산소 패러다임과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의 경쟁

왜 산소를 산소라 했는가: 산소 패러다임의 미해결 문제들

플로지스톤을 꼭 죽여야만 했을까

 

8장 물은 H2O인가?

물이 H2O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H2O의 역사: 돌튼과 아보가드로

원자에 대한 실재론 논쟁

유기화학에서 내려준 H2O의 결론

원자론의 역사가 과학교육에 주는 교훈

 

9장 물은 항상 100도에서 끓는가?

고정하기 힘들었던 물의 비등점

물 끓여보기

신기하고도 복잡한 거품 형성

들룩 수난기

물리학이냐 공학이냐

전문화와 생활과학

 

10장 집에서 하는 전기화학

전지의 발명

전기화학은 민중과학?

전지의 작동원리에 대한 논쟁

월라스턴의 실험: 현대적 설명의 재미있는 어려움

은나무 기르기

소금물의 전기화학

상보적 과학지식: 회복과 연장

 

PART 3 과학지식의 풍성한 창조

 

11장 과학지식의 창조: 탐구와 교육

창의성 논의

과학에도 솜씨가 필요하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언어의 기반

지식에 들어가는 은유법

개념의 창조와 발달

탐구와 창의력의 교육

 

12장 다원주의적 과학

다원주의의 전망

과학지식의 천하통일?

다원주의의 이점

다원주의에 대한 우려

겸허의 과학

획일적 사회를 넘어서

 

* 감사의 말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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