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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회 종교 아리랑 (님웨일즈·김산, 1984)

넷볼러 2018.03.22 13:40 Views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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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님웨일즈·김산, 송영인 옮김, 동녘, 1984년 초판, 2016년 개정3판 20쇄.

 

 

대학시절 흥미있게 읽었던 김산(본명 장지락)의 일대기를 또 한 번 읽었다. 대학시절 가장 가슴에 와닿은 책들 중 몇 권에 속한다. 당시 읽은 대부분의 책들이 역사, 사상, 철학, 소설 등 이었으나 이 책은 실존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넘어, 당시 조선이 처했던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치열한 삶이 자세하게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내가 일제강점기에 젊은시절을 보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다.

 

일제 침략에 맞서거나 피하거나 혹은 살 길을 찾기 위해 해외로 떠난 수많은 조선인들의 삶은 처절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중국에서 소련에서 혹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파란만장하게 펼쳐졌고 대부분의 경험은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특히 만주를 중심으로 한 중국내에서의 조선인들의 삶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기록이 없는 이유는 상당수가 치열한 독립투쟁 과정에서 생을 마감했고, 해방 후에는 남북이 분단되고 전쟁이 터지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남과 북에서 모두 입지가 협소해지거나 정치적으로 핍박(혹은 처형, 암살 등)받는 처지에 놓이다보니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이 실권을 잡으면서 처형당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물이었을 것이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정권을 잡으면서 김구, 여운형, 조봉암 같이 암살당하거나 실권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애사를 기록에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가 1937년 여름에 옌안에서 만난 조선인 독립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일대기이다. 이 책은 1920∼1930년대라는 격동기를 살다 간 김산의 고뇌, 투쟁, 사랑, 열정, 사상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있다.

 

‘전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드라마’ 이것이 이 책의 본질이다. 수많은 독립투사들 중의 하나였던 김산의 삶을 통해 우리는 당시 독립과 혁명을 위해 몸을 바쳐 싸웠던 선조들의 삶을 가늠할 수 있다.

 

오늘, 김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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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웨일즈(1907~1997)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저서를 내었으며, 오랜 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하여 많은 글을 집필하였다.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참가하였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는 "Inside Red China", "The Chinese Labor Movement", "Red Dust", "Sketches and Autobiographies of the Old Guard" 등이 있다. 

김산(1905~1938) 
본명은 장지락(張志樂). 평북 용천 출생.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24년 고려공산당 베이징 지부를 설립하고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7년 중국의 옌안에서 님 웨일즈와 만나게 되었고 님 웨일즈는 이 만남의 성과를 담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를 출간했다.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성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됐으나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키는 복권을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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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5)

나는 상하이에서 젊은 테러리스트들을 만났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적 영웅주의로 조선인들을 학살한 것에 대해 복수를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도 비참하였다. 1919년에서 1927년 사이에 일본놈에게 처형당한 의열단원만 해도 무려 300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상하이의 조계(祖界)에 모여 있던 3,000명의 조선인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임시정부는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되었는데 1924년에는 몇몇 노인네들만을 상심과 실의 속에 남겨둔 채 와해되고 말았다.

나는 다른 조선인 800명과 함께 광둥으로 가서 중국혁명에 참가하였다. 그리하여 1925년부터 1927년 동안 조선혁명지도부의 정수가 무참히 희생당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광동코뮨 때만 해도 200명의 공산당 지도자가 참가하였는데 그 대다수가 죽었다. 나는 전멸할 운명에 놓인 중국 최초의 소비에트(하이루펑 소비에트)에서 다른 조선인 동지 15명과 싸웠다. 그중에 지금까지 살아서 그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두 명 뿐이다. 니 기회를 틈타 일본은 1928년 3월 15일에 조선에서 1,000명의 동지들을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일제히 검거했다.

 

(74-75)

밥은 하루에 두 번만 지었다. 밥 지을 땔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침밥은 9시에 먹는데 상에는 흰쌀밥, 국, 소금에 절인 정어리, 채소-대개 무말랭이나 절인배추-가 올라온다. 점심밥에는 아침에 먹다 남은 것을 먹기 때문에 찬밥이란 것 말고는 아침밥과 다른 것이 없다. 저녁밥은, 겨울에는 5시나 6시에, 여름에는 6시나 7시에 먹는다. 저녁밥도 아침밥과는 별로 다를 것이 없고, 한 달에 두세 번 닭고기국이나 쇠고기국을 먹는다. 우리집은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비참한 지경은 아니었다. 가난한 조선 농민들은 설날, 추석날, 단옷날 등 명절 때에나 겨우 고기맛을 본다. 가난한 집안의 여자와 어린애들은 세 끼 식사 중 배부르게 먹는 때가 한 번도 없으며 언제나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

 

(98)

3·1운동 이전까지는 나도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녔다. 비록 기도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교회가 조선에서 가장 훌륭한 기구라는 것은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파멸을 본 이후에는 내 믿음이 깨어져버렸다. 나는 신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내가 태어난 세계에는 별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한가지 사실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것은 어느 미국 선교사의 말 때문이었다.

“조선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조선에 벌을 내리고 계십니다. 지금 조선은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보상이 끝난 다음에 조선을 원래대로 돌려놓을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보상이 끝났다고 생각하신다면 조선은 독립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안 됩니다.”

왜 조선만이 유일하게 기독교 윤리를 실천해야 하는 국가인가 자문해보았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자기네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대전 때 수백만명의 기독교인이 서로 살상했다. 승리를 얻기위해서는 싸워야 하는 것이다. 단지 기도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다.

- - - 이 땅의 모든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내 정치경력은 3·1운동에서 시작되었다.

 

(159)

상하이에서는 여러 가지 정치논쟁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논쟁을 무시하고 왜놈에 대해 직접적인 행동으로 돌입하는 몇몇 청년 테러리스트 집단이 있었다. 다른 모든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의 활동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나 자신도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래서 묘하게도 조선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운동의 역사와 배경을 완전히 알게되었다.

테러리즘은 조선인의 항일투쟁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무정부주의와 마찬가지로 테러리즘은 대중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곳인, 고립된 농민을 단위로 하는 사회에서 발전한다. 그것은 상존하는 억압과 좌절감, 허무감에 대한 강한 반발이다. 그것은 노예화된 민족만이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196-197)

톨스토이주의는 어떤 것으로도 발전할 수가 있다. 그의 철학은 인간 사유의 모든 면에 적용가능한 보편적인 것이다. 그의 철학은 무정부주의로 나아가는 논리적인 디딤돌이기도 했고, 김충창의 지도 아래 헤겔 변증법으로, 또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나아가는 논리적인 디딤돌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옛날 선생님을 좋아하듯이, 나는 아직도 톨스토이를 좋아한다. 1921년부터 1927년 광둥코뮨 때까지 나는 톨스토이 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거의 매일같이 읽었다.

- - 톨스토이는 극동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중국, 일본, 조선의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러시아 내의 작가들 중에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 - - -

- - -

톨스토이의 작중인물은 언제나 투쟁하고 있으며, 절대로 동의와 해결에 도달하는 법이 없다. 그의 모든 저서는 이러한 변증법적인 동인에 대한 연구이다. 그의 정신은 개방적이고 객관적이며 모든 사실과 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강하다. 그는 인간의 삶과 활동을 그가 집필한 시대에 일어난 그대로 그렸다. 그리고 러시아의 이러한 모습은 최초의 변동기에 처한 동양 여러 나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들어맞았다. 만일 톨스토이가 그렇게 일찍 죽지않았다면 그는 혁명으로 돌아섰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정직했기 때문에 자기를 둘러싼 현실이 아직 해결의 타당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래서 해결책을 만들어 낼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톨스토이가 10월혁명을 생전에 경험하였다면, 얼마나 장대한 10월혁명 서사시를 썼을까 하고 이따금씩 생각해본다. 틀림없이 모든 이야기를 10권 이상의 책으로 써서, 모든 변증법적 모순과 투쟁을, 모드 정의와 불의를, 모든 영웅주의와 나약함을, 모든 이상과 환멸을 그려냈으리라.

 

(262)

“자네도 저 청년만큼이나 어리고 순진하군. 계급적 정의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전의 필수적인 수단이야. 의심나는 경우에는 보다 적게죽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이 죽여야 해. 자네는 지주들이 지배했던 하이루펑의 실정과 그들이 자행한 잔인한 짓거리를 모르고 있어. 만일 내가 본 것을 자네가 직접 보았더라면 여기에 아무런 의문도 없었을 거야. 농민들의 행위는 지주들이 한 짓거리의 100분의 1도 안되네. 지주들에 비하면 농민들은 아주 극소수밖에 죽이지 않았지. 자기를 방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농민들은 알고 있네. 만일 계급적 적을 혼쭐내지 않으면 농민들은 사기를 잃을 것이고, 혁명의 성공에도 의심을 품게될 것이네.

 

(264-265)

하이루펑에서 몇 개월 있는 동안에 나는 사형수 목록을 여럿 보았다. 명부에 오른 이름들이 펜대 하나로 너무도 간단히 체크되거나 지워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런 일은 국민당이 훨씬 심했고 수법 또한 더 지독했다. 양자의 차이는 국민당이 중국 인민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용감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사람들을 죽이는데 반하여, 혁명가들은 타락분자와 기생분자, 사회적으로 유해한 자들을 죽인다는 데 있었다.

하이루펑의 홍군은 그래도 인도적이어서 가능한 한 친절하게 대하고 총사해버리는 것이 그만이었지만, 지주 밑에서 학대에 시달리고 고문으로 고통받아온 지방농민들은 계급적인 죄인에 대하여 결코 친절이나 선심을 베풀지 않았다. - - -

- - - 나는 정치부에 있었으므로 죄인들을 총살하도록 사단장에게 요청했지만, 사단장은 잘라말했다.

“아니오. 절대 안되는 일이오. 농민들은 이런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한 달 동안이나 싸워왔소. 이자들은 인민의 죄인들이니 농민들이 하고싶은대로 놔두어 정의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오. 이 한 달 동안에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그 인간백정들에게 살해당했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요. 만일 진짜 고문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지난날의 교도소 고문실의 벽에다 귀를 대고 들어보는 게 좋겠소. 물어보시오. 인민들은 겨우 세 놈만을 자기들 손으로 죽이고 싶어하오. 그런데 만일 이 세놈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이자들은 삼천 명을 죽일 게 뻔한 일 아니겠소?”

그러나 광저우에서 처형된 세 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또다시 생각났다. 이것은 오직 인간적인 복수일 뿐이었다. 패자는 죽어야만 하고 승자는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운영자 주) 이 부분은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야

“이것은 오직 인간적인 복수에 불과했다. 패자를 죽여야 승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288-289)

그날 밤에는 산을 몇 개나 넘고 엄청나게 많은 독사와 맞닥뜨렸다. 많은 동지들이 뱀에 물려 지독히 고생하거나 죽었기 때문에 오성륜과 나는 뱀만 보면 간담이 서늘하였다. 더군다나 우리는 맨발이었다. 광둥성 농부들은 아무도 신을 신지 않았다. 4월 이후 우리들은 모두 맨발로 지냈고 그 이전에도 고작해야 짚신밖에 신지 못했다.

이제 오성륜은 아주 야위어서 마치 말라빠진 늙은이같이 보였다. 나는 4월에 말라리아에 걸리기 전까지는 튼튼했으며 몸매도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말라리아에 걸려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계속된 두 달 동안의 행군과 전투로 마치 귀신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하도 아파서 정신없이 걸어간 날도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자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나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면 잠을 깼다. 기분이 좋은 날도 있었지만 몸이 말할 수 없이 허약해져갔다. 수없이 많은 동지들이 나와 똑같은 상태 혹은 더 비참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몇 주일동안이나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각기병에 걸려 다리가 부어올랐으며, 앉지도 못할 정도로 온몸에 심한 종기가 났다. 거의 반 년 동안을 산 속에서 아무런 바람막이도 없이 잠을 잤고, 깊은 물속을 행군했다. 거의 매일 밤마다 비가 내려서 잠잘 때면 풀잎에 맺혀있는 물방물로 몸이 흠뻑 젖었다. 비를 막을 것이라곤 삿갓 하나밖에 없었고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그 당시 하이루펑 생활로 받은 타격을 원래대로 회복하지 못했고, 그 이후 건강이 계속 좋지 못했다. 심지어는 말라리아도 1929년에야 겨우 떨어졌다.

 

(392-393)

나는 아주 천천히 식탁으로 갔다. 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 -

“5분 안에 둘 중 하나가 죽게 될 것이다.”

- - -

나는 그가 불쌍해서 칼을 식탁 위에 남겨둔 채 천천히 방을 나왔다.

분노가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지독한 슬픔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나 자신을 죽일 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총도 없었고 독약을 살 돈도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언제라도 굶어죽을 수는 있었다. 나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죽기 싫다는 감정과 싸우느라고 완전히 지쳐버렸던 것이다. 나는 허해져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쉽겠지만, 안타깝게도 베이징에는 빠져 죽을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나는 아름답고 맑은 조국의 강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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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03. 10

평양 교외에 있는 차산리에서 장지락(張志樂)이름으로 세째 아들로 태어남

 

1916년 11살

11살 가출. 아는 친척집을 전전하다 작은 형네 집에 얹혀 삶. 기독교 학교에 들어가 공부.

 

1919년 14살

3.1운동에 참여.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제대 응시 준비. 신문배달, 헌책 수거해서 팔기, 인력거 끌기 등으로 생활

 

1920년 15살

모스크바가 '새로운 사상'의 원천임을 깨달아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가던 중 합니하의 신흥학교 입학. 3개월 과정을 수료 후 상해로 가서 안창호, 이광수, 김원봉, 오성륜 등 만나 교류

  

1922년 17살

북경 국립 의과대학 입학 재학(1925년 광동혁명 때까지 다님.) '금강산에서 온 승려' 김충창(본명 김성숙)을 만나 마르크스 레닌 주의에 빠짐. 무정부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로 변함. 톨스토이에 심취. 다음해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여 공산주의 잡지 <혁명>을 간행

  

1925년 20살

광저우로 달려가 중국 대혁명 참여

 

1927년 22살

12월 광동 코뮨의 주역이었으나 3일 천하로 끝나고 쫓기는 신세가 됨 

 

1928년 23살

해륙풍 소비에트로 들어가 백군과 치열하게 싸우다 탈출하여 홍콩 거쳐 상해 도착.

 

1930년 25살

11월에 북경에서 체포됨. 체포 이전 2년 가까이 북경의 공산당 서기로서 임무 수행. 일본 영사관에 넘겨져 조선에서 심문 받으며 물고문 당함. 고문 후유증으로 이후 오랫동안 폐에서 피가 나오는 고통을 받음. 이듬해 4월에 석방됨. 이후 교사 생활을 하면서 학생, 청년, 농민들을 조직함

 

1933년 28살

중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잡혀 남의사(국민당 산하 파시즘 비밀조직) 요원들에게 전향 및 변절할 것을 강요당함.

 

변절과 음모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설사 우리의 사업이 달성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직하게 죽는 편이 더 낫다. 나는 내 자신의 용기와 지조에 완전히 자신감을 얻었다. (p.271)

 

 

1934년 29살

함께 투옥되었던 중국 여인 조아평과 결혼.

 

1936년 31살

상해에서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을 참여시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 조선해방동맹과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조선혁명가 대표로 김산을 선발함. 옌안으로 옮김

 

1937년 32살

조아평이 아들 고영광을 낳음. 항일군정대학에서 물리학, 수학, 일본어, 한국어 등의 과목을 가르침. 이 시기에 님 웨일즈를 만남.

 

1938년 33살

캉셩(강생)에 의해 '트로츠키주의자' 혹은 '일본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처형당함

 

1978년

아들 고영광이 중국공산당 중앙정부 조직부에 김산의 명예회복 조사 요청

 

1983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국은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의함.

 

"김산의 처형은 특수한 역사 상황 아래서 발생한 잘못된 조치였다. 본 결의에 의해 그에게 덮어씌워졌던 불명예가 제거되며 그가 지녔던 명예를 모두 그에게 되돌린다. 또한 이로서 그의 당원자격은 회복된다" (p.337)

 

 

 

추천의 글|리영희 
한국어판 서문|님 웨일즈 
서장|님 웨일즈 

01. 회상 
02. 조국에서의 어린 시절 
03. 독립선언 
04. 도쿄 유학 시절 
05. 압록강을 건너서 
06. 상하이, 망명자의 어머니 
07.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 
08. 걸출한 테러리스트 : 김약산과 오성륜 
09. 결코 결혼하지 않으리라 
10. 톨스토이에서 마르크스로 
11. 중국 ‘대혁명’에 참가하여 
12. 광둥코뮌 
13. 하이루펑에서의 삶과 죽음 
14. 상하이에서의 재회 
15. 위험한 생각 
16. 다시 만주로 
17. 위대한 첫사랑 
18. 아리랑 고개를 넘다 
19. 당내투쟁과 개인적 투쟁 
20. 살인, 자살, 절망 
21. 다시 대중운동으로 
22. 다시 일본에 잡히다 
23. 두 여인 
24. 항일전선 
25.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 

기록을 끝내며|님 웨일즈 
해설|조지 토튼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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