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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류학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넷볼러 2018.05.06 16:28 Views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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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 22,000원.

 

 

이덕일,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사람들은 미시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를 서술한 사람들이다. 리처드 도킨스나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들은 인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거시적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각각의 시각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두 가지 관점들이 우리 삶을 바라보고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사피엔스는 후자의 관점 다시말해 거시적으로 인류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직전에 읽은 <당신의 직업이 사라진다>에서 저자 데이비드 서가 잠깐 소개한 책으로 그 책을 읽을 때 이미 이 책 <사피엔스>가 내 책상에 올려져 있어서 은근히 기대를 갖게한 책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무명의 작가란다.

그는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이 발전하여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개척하는 지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수만 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오늘의 인간을 있게한 세 가지 대혁명을 제시한다.

 

첫째가 약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두 번째가 약 12,000년 전의 농업혁명, 세 번째가 약 500년 전의 과학혁명이다. 과학혁명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이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지는 뒷부분에 자세히 소개된다.

 

저자는 역사 발전 과정의 결정적인 일곱 가지 촉매제로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 과학을 지목했다. 인지혁명의 시작으로 불을 지배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라선 인간은 언어(뒷담화)를 통해 사회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수렵채집인에 머물던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를 경험한다. 늘어난 인구를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는 종교, 계급, 권력 등 허구의 신화들이다. 농업의 발달은 부의 증가와 정착생활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돈을 맹신하게 되었으며, 돈의 맹신은 사회적 모순을 야기한다. 500년 전 과학혁명은 우리에게 이전 시기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보였다.

 

저자는 10만 년 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여섯 종의 인간 종이 살았으나 현재는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어떻게 유일한 승자로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진 평원에는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고,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대형 동물군들이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복종한 소, 돼지, 양, 개 등 몇몇 종만이 개체수를 늘릴 수 있었지만, 산업적으로 강제사육 당하는 그들의 삶은 비참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다. 유럽 사람들에게 돈은 죽음도 불사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신대륙을 찾아 떠난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활용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했다. 노예산업에 돈을 투자한 평범한 유럽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무관심하고 무지했을 뿐이다. 이런 자본은 서구 세계의 과학과 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고, 이제 인간의 과학은 불사(不死)의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약속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기술 발달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예견한다. 부자들은 영원히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세상. 이런 미래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말이다.

 

 

(10-11)

전 세계 모든 지역 사람들은 놀라운 신기술에 접근할 수단을 가지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 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25-26)

사실은 이렇다. 2백만년 전부터 약 1만 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많은 종이 동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41)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44)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71)

3만 년 전 전형적인 수렵채집인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달콤한 식품은 오직 하나, 잘 익은 과일뿐이었다. 무화과가 잔뜩 열린 나무를 발견한 석기시대 여성을 떠올려보자.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행동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 지역에 사는 개코원숭이 무리가 모두 따먹기 전에 말이다. 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113)

사피엔스의 미 대륙 정착과정은 평화롭지 않았다. 사피엔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희생자들의 흔적이 길게 남았다. 14,000년 전 미대륙의 동물군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 - - 미 대륙은 진화의 거대한 실험실로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이 진화하고 번성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사피엔스가 도착한 지 2천 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유일무이한 종 대부분이 사라졌다. 오늘날의 추정에 따르면, 그 짧은 기간 동안 북미에서 대형동물 47속 중 34속이 사라졌다. 남미에선 60속 중 50속이 사라졌다.

 

(115)

호주와 미 대륙의 대량멸종,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로아시아에 퍼져나가면서 일어났던 그보다 소규모의 멸종들, 가령 다른 모든 인간 종들의 멸종 그리고 고대 수렵채집인이 쿠바 같은 외딴 섬에 정착했을 때 일어난 멸종들을 다 합치면, 첫 번째 이주의 물결은 동물계에 닥친 가장 크고 신속한 생태적 재앙이었다는 결론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것은 털복숭이 대형동물들이었다.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 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바퀴, 문자, 금속도구를 발명하기 한참 전부터 지구 대형동물의 절반 가량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126-127)

밀은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삶을 더 비참한 생활과 교환하도록 설득했을까? 무엇을 보상으로 제시했을까? 더 나은 식사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명심하자. 인류는 아주 다양한 음식을 먹고사는 잡식성 유인원이다. 농업혁명 이전 식사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었다. 곡류를 중심으로 하는 식단은 미네랄과 비타민이 부족하고 소화시키기 어려우며 치주조직에 해롭다. 밀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농부의 삶은 수렵채집인의 삶보다 불안정했다. 수렵채집인은 수십 종의 먹을 거리에 의지해 생존했기 때문에 설령 저장해둔 식량이 없더라도 어려운 시절을 몇 해라도 견뎌나갈 수 있었다. 특정한 종을 손에 넣기 힘들어지면 다른 종을 사냥하고 채집할 수 있었으니까.

 

(133-134)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추가로 노동을 더 하려고 결정할 때, - - -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그것은 이치에 닿았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 - -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 - -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쟁기질을 도입함으로써 마을의 인구가 1백 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굶어죽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열 명이 있었겠는가?

 

(153)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들을 먹여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 - -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169-170)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칙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실재라고 늘 주장해야 한다.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함무라비가 그렇다고 해서가 아니라 엔릴과 마르두크가 그렇게 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등한 것은 토머스 제퍼슨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이 최선의 경제체제인 것은 애덤 스미스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불변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218-219)

여성의 자연스러운 기능은 애를 낳는 것이라는 주장.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에는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는 법과 규범, 권리와 의무는 대부분 생물학적 실체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 -

생물학이 아니라 신화가 남녀의 역할, 권리, 의무를 규정하기 때문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의미는 사회 따라 크게 달랐다. 혼동을 줄이기 위해 학자들은 보통 생물학적 범주인 성(性)과 문화적 범주인 젠더를 구분한다. 성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고, 이 구분의 속성은 객관적이기 때문에 역사를 통틀어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 젠더는 남아와 여자로 구분되고(일부 문화에서는 다른 범주로 구분한다), 소위 ’남자다운‘ 속성과 ’여자다운‘ 속성의 내용은 상호주관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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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사람들이 기꺼이 그런 일을 하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력의 산물을 믿기 때문이다.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원자재다. 앞의 부유한 농부가 재산을 팔고 별보배고등 껍데기 한 자루를 받아서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고 하자. 그는 그곳의 사람들이 별보배고등 껍데기를 받고 기꺼이 쌀과 집과 밭을 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화폐란 상호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런 상호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이다.

 

(295)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구성원 모두가 정치권력의 합법적인 근원이며,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 종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2백 개에 가까운 독립국가는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될 것이다. 스웨덴인, 인도네시아인, 나이지리아인이 똑같은 인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단일 세계정부가 이들을 지키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298)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있었다.

 

(306-307)

로마인들이 오랫동안 관용을 거부했던 유일한 신은 일신교적이고 개종을 요구하는 기독교의 신이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과 의례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수호신과 황제의 신성에 경의를 표할 것을 기대했다. 이는 정치적 충성심의 선언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격렬하게 거부하고 화해를 위한 모든 시도를 거절하는 데까지 나아가자, 로마인들은 정치적 전복을 꾀하려는 세력으로 보아 박해로 대응했다. 이런 박해조차 주저주저하는 식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 3백 년만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할 때까지, 다신교를 믿는 로마 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한 사건은 네 차례를 넘지 않았다. 지역의 행정관과 총독이 자기들 나름으로 반기독교적 폭력을 일부 일으켰을 뿐이다.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들을 다 합친다 해도,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들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16~17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전쟁은 특히 악명 높다. 관련자 모두가 예수의 신성 그리고 관용과 사랑이라는 복음을 믿었지만, 그 사랑의 성격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310-312)

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전도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 - - 일신론자들은 자신들이 한 분 밖에 없는 신의 모든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종교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2천 년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기원후 1세기 초반, 세상에는 일신론자가 전혀 없다시피 했다. 기원후 500년 경이 되자 세계 최대의 제국 중 하나인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하느라 바빴다. 기원후 첫 1천 년이 마무리될 무렵에는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사람의 대부분이 일신론자였고, 대서양에서 히말라야에 이르는 여러 제국들이 자신들은 위대한 유일신에게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했다. 16세기 초에 이르자 일신교는 아프로아시아에서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했으며, 남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향해 긴 촉수를 뻗기 시작했다. 오늘날 동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저런 유일신을 충실히 믿고 있으며, 세계 정치질서 또한 유일신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 - -

일신교들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면서 대문으로 잡신들을 내쫓고서는 창문을 통해 이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성자들로 나름의 만신전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은 다신교의 만신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유피테르 신이 로마를 수호하고 우이칠로포치틀리 신이 아즈텍 제국을 지켰듯이, 모든 기독교 왕국에는 수호성인이 있어서 고난을 극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었다. 영국은 성 조지의 수호를, 스코틀랜드는 성 안드레의 비호를 받았다. 헝가리는 성 이슈트반, 프랑스는 - - -

 

(322)

- - - 그는 ‘부처’로 알려졌다.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위해서 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 - -

불교는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신들은 비와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 신들은 집착에서 고통이 일어난다는 법칙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집착에서 해방되었다면, 어떤 신도 그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일단 어떤 사람의 마음에서 집착이 일어난다면, 우주의 어떤 신도 그를 번뇌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346-347)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혁명은 서유럽에서, 아프로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말이다.

왜 과학혁명은 하고많은 곳을 놔두고 하필 그곳에서 일어났을까? 어째서 중국이나 인도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째서 실제보다 2세기 앞이나 3세기 뒤가 아니라 두 번째 천년의 한중간에 일어났을까? 우리는 모른다. 학자들은 열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362-363)

우주를 이해하려면, 관찰들을 연결하여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전통에서는 보통 이야기를 써서 이론을 꾸며냈지만, 현재 과학에서는 수학을 사용한다.

성경이나 코란, 베다, 유교의 경전에서는 방정식, 그래프, 계산이 거의 없다. 전통적 신화와 서적이 보편 법칙을 서술할 때는 수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형태로 제시했다. 따라서 마니교의 근본 원리는 세상이 선과 악의 전쟁터라고 이야기했다. - - -

- - - 1687년 아이작 뉴턴은 현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틀림없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간했다. 뉴턴은 운동과 변화의 일반이론을 제시했다. 뉴턴 이론의 위대한 점은 세 개의 단순한 수학법칙으로 떨어지는 사과에서부터 별똥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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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대포알이나 행성의 운동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사람은 해당 물체의 질량, 방향과 가속도, 거기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숫자들을 뉴턴의 방정식에 집어넣으면, 그 물체의 미래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술처럼 작동했다. 과학자들이 뉴턴의 법칙에 잘 들어맞지 않는 소수의 관찰결과와 마주친 것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였고, 그런 관찰은 물리학의 새로운 혁명으로 이어졌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었다.

뉴턴은 자연이라는 책이 수학의 언어로 쓰여있음을 보여주었다.

 

(380-381)

19세기까지만 해도 최고의 의사들조차 어떻게 감염을 방지하고 조직의 부패를 막는지 알지 못했다. 야전병원 의사들은 병사들이 사지에 사소한 부상을 입었을 때조차 괴저가 두려워서 손과 다리를 늘상 절단했다. 절단은 다른 모든 의학적 처치(이빨 뽑기 등)와 마찬가지로 마취제 없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마취제-에테르, 크롤로포름, 모르핀-가 서구 의학계에 통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였다. - - -

워털루 전투(1815년)가 끝난 다음 날 아침에는 야전병원 근처에서 톱질로 잘려나간 팔다리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 - 그러나 워털루 전투 이후 2세기 동안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알약, 주사, 복잡한 수술이 수많은 질병과 부상에서 우리를 구했다.

 

(399-400)

근대 초기에 유럽은 어떤 잠재력을 개발했기에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는 서로 보완적인 두 가지 답이 존재하는데, 바로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다.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를 누리기 전부터도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의 노다지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유럽인들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부릴 수 있었다. 따라서 과학과 자본주의가 유럽 제국주의가 21세기 유럽이후 세상에 남긴 가장 중대한 유산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학과 자본의 힘은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운영자 주) 저자의 이 관점에 나는 의문을 갖는다. 밑줄 친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를 누리기 전부터도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라고 서술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이다. 유럽인에게 원래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습관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424)

인도에 부임하는 영국 장교들은 길게는 3년간 콜카타 대학교에서 공부해야 했다. 여기서 영국법과 함께 힌두법과 무슬림법을, 그리스어 및 라틴어와 함께 산스크리트어 - - - 문화를 배워야했다. - - - 덕분에 유럽 정복자들은 자신의 제국을 매우 잘 알았다. 그 이전의 어느 정복자보다도, 심지어 원주민들보다도 훨씬 더 깊이.

그런 지식이 없었다면, 우스울 정도로 적은 숫자였던 영국인이 수억명의 인도인들을 2세기에 걸쳐 지배, 억압, 착취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19세기 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최대 3억명에 이르는 인도인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데는 5천 명이 채 되지 않는 장교, 4만~7만 명의 사병, 그리고 사업가들, 떡고물을 바라는 한량들,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다 합한 10만 명의 민간인으로 충분했다.

 

(460-463)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국유화(1800년), 영국의 인도 국유화(1858년)가 이루어졌지만, 이로 인해 자본주의와 제국의 포옹이 끝났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양자의 관계는 19세기에 더 끈끈해졌다. 주식회사는 더 이상 민간 식민지를 개척하고 지배할 필요가 없었고, 이제 사장과 대주주들은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에서 권력의 끈을 조종했다. 이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뒷배를 봐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사회 비평가들이 빈정댔듯이, 서구 정부는 자본주의자들의 노동조합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부가 큰돈을 벌려고 나선 가장 악명높은 사례가 영국과 중국이 벌인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이다. 19세기 전반 영국 동인도회사와 잡다한 영국 사업가들은 마약 수출로 돈을 벌었는데, 특히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는 것이 주종이었다. - - - 1840년 대 말 중국 정부는 마약 거래를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 - - 실제로 많은 의원과 각료들이 마약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정부에게 행동에 나서라는 압력을 넣었다.

1840년 영국은 ‘자유무역’이라는 명목으로 중국에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은 식은죽 먹기였다. 자신감 과잉이던 중국은 증기선, 대구경 대포, 로켓, 신속발사 소총 같은 영국의 신무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 - -

이집트 역시 영국 자본주의의 힘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투자자들은 이집트의 지배자들에게 거액을 빌려주었는데, 처음에는 수에즈 운하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기 위해서였고 - - - 이집트의 빚은 점점 더 많아졌고, 유럽인 채권자들은 이집트 내정에 점점 더 많이 관여했다. 1881년 이집트 민족주의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모든 외국 채무를 갚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것이 불쾌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1년 후 나일강에 육군과 해군을 파견했고, 이집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었다.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치러진 전쟁이 이것들뿐만은 아니었다. - - -

오늘날 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천연자원보다 경제적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순수한 경제적 데이터 외에도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서 매겨진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라도 독재 정부에 전쟁이 만연하고 사법제도가 부패해있다면 등급이 낮은 것이 보통이다. 거꾸로 천연자원이 없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며, 사법제도가 공정하고, 자유정부를 가진 나라는 신용등급을 높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468)

노예무역은 정부나 국가에게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순수한 경제사업으로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유시장에 의해 조직되고 자금조달이 이루어졌다. 민간 노예무역 회사들은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주식거래소에서 주식을 판매했고, 좋은 투자처를 찾는 중산층 유럽인들이 이 주식을 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회사는 배를 사고 선원과 군인을 고용한 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서 미국으로 수송했다. 노예는 대형 농장의 주인에게 팔렸고, 그 수익은 다시 설탕, 코코아, 커피, 담배, 면화, 럼주 같은 농장의 산물을 구매하는데 쓰였다. 이들은 유럽을 돌아와 설탕과 면화를 비싼 값에 판매한 뒤, 다시 돛을 달고 아프리카로 향하여 같은 영업을 되풀이했다. 주주들은 이런 사업방식에 매우 만족해했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렇기는커녕,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 - -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타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 - - 지구 한켠에서 현재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수없이 많은 범죄와 악행이 뒤따랐다.

 

(480)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496)

세상에 남아 있는 기린은 약 8만 마리에 지나지 않지만, 소는 15억 마리에 이른다. 늑대는 20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가축화된 개는 4억 마리다. 침팬지는 25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사람은 70억 명이다. 인류는 정말로 지구를 접수했다.

 

(500)

최초의 상업용 기차가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서 운행을 시작한 지 10년 뒤인 1830년에 최초의 기차 시간표가 나왔다. 기차는 마차보다 훨씬 빨랐으므로, 현지 시각의 변덕스러운 차이가 심각한 불편을 초래했다. 1847년 영국의 열차 회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제부터 모든 열차 시간표를 리버풀이나 맨체스터나 글래스고의 현지 시간이 아니라 그리니치 천문대 표준시에 맞추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기관들이 열차 회사들의 모범을 따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1880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 나라가 국가 시간을 채택하고 국민들에게 현지 시각이나 해가 뜨고 지는 주기 대신에 시계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았던 시작은 결국 몇십분의 일초까지 똑같이 맞추는 세계적 시간표 네트워크를 낳았다.

방송매체가 등장하면서-라디오를 시작으로 TV가 나타났다-시간표의 세상을 열었고, 시간표의 주된 강요자이자 복음전도사가 되었다. 라디오 방송국이 처음으로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시보방송이었다. “삐삐 삐-” 소리는 멀리 떨어진 주거지나 바다의 선박에서 시간을 맞출 수 있게 해주었다.

 

(513)

국가는 상상의 존재라는 자신의 속성을 숨기려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자신이 자연적이며 영원한 실체라고, 어떤 시원적 시기에 모국의 흙과 사람들의 피가 섞여서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보통 과장된 것이다. 오랜 옛날에도 민족은 존재했지만 그 중요성은 오늘날보다 훨씬 적었다. - - - 게다가 고대에서 국가가 어떤 중요성을 지녔든간에, 지금껏 살아남은 국가는 거의 없다. 현존하는 국가 대부분은 산업혁명 이후에야 진화한 것이다.

중동에는 그런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는 프랑스와 영국 외교관들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 경제를 무시하고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경계선의 산물이다. 1918년 이 외교관들은 지금부터 쿠르드인, 바그다드인, 바스라인은 이라크인이 된다고 결정했다. 누가 시리아인이 되고 누가 레바논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은 프랑스인들이었다. 사담 후세인과 하페즈 알 아사드는 영국과 프랑스가 만들어낸 자신들의 나라에서 국가의식을 육성, 강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570)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계,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이 천재 생쥐를 만들 수 있다면 천재 인간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일부일처제 밭쥐를 창조할 수 있다면 평생 배우자에게 충실하도록 유전적으로 타고난 인간을 왜 못 만들겠는가?

 

(580)현재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 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언제가 스스로를 속였다. 사실 가난한 농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지능은 황태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학적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은 과학소설이 아니다. - - -

- - - 적어도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은 같은 인간이지만, 우리의 후계자들은 신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역사연대표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6. 피라미드 건설하기

7. 메모리 과부하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후기_ 신이 된 동물

역자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329 운동화 신은 뇌 (존레이티, 에릭 하이거먼, 2017) file 넷볼러 2019.06.21 1
328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2008) file 넷볼러 2019.06.07 4
327 스포츠 리터러시 (최의창, 2018) file 넷볼러 2019.04.01 12
326 코칭이란 무엇인가(제2판) (최의창, 2018) file 넷볼러 2019.03.14 5
325 ​​​​​​​빈곤의 종말 (제프리 D 삭스, 2011) file 넷볼러 2019.03.14 6
324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라즐로 복, 2015) file 넷볼러 2019.03.14 5
323 운동하는 아이가 행복하다 (정재용 외, 2018) file 넷볼러 2019.03.14 7
322 한국인의 거짓말 (김형희, 2016) file 넷볼러 2019.03.14 6
321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2017) file 넷볼러 2019.03.14 6
320 좌익 축구 우익축구 (니시베 겐지, 2016) file 넷볼러 2018.09.21 10
319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도현신, 2016) file 넷볼러 2018.09.10 14
318 기술의 대융합 (이인식 기획, 오세정 외, 2010) file 넷볼러 2018.08.21 13
317 조선 4대 사화 (김인숙, 2009) file 넷볼러 2018.08.13 11
316 제국의 부활 (소준섭, 2012) file 넷볼러 2018.08.12 17
315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충실할까 (도쓰카 다카마사) file 넷볼러 2018.05.09 17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file 넷볼러 2018.05.06 24
313 당신의 직업이 사라진다 (데이비드 서, 이선) file 넷볼러 2018.04.15 30
312 아리랑 (님웨일즈·김산, 1984) file 넷볼러 2018.03.22 21
311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2014) file 넷볼러 2018.03.01 31
310 축구철학의 역사 (조나단 윌슨) file 넷볼러 2018.02.0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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