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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입시공화국의 종말 (김덕영, 2007)

넷볼러 2012.05.24 23:36 Views :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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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쓰는 독후감이다. 교육청 일이 바빠 두어달을 꼬박 일 속에 파묻쳐 살았다. 출장가다보면 돌 굴러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인생을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빨리 정상을 되찾아야 하는데, 일의 양이 너무 많아 책을 잡을 시간이 없다. 그래도 억지로 한권 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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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공화국의 종말, 김덕영, 인물과 사상사, 2007.

 

 

요즘 스포츠클럽 리그가 진행되는 학교현장에 매일 출장을 나가고 있다. 현장에 가면 경기가 끝난 후 지도교사들을 불러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는데 그중 이런 말을 한다.

 

“연말에 아이들 활동한 거 생활기록부에 잘 기록해 주십시오. 그래야 상급학교 입시에 반영될 수 있는 근거가 확실하게 마련될 수 있지 않습니까.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입학사정관제에 이 경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더 잘 입력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되었으나 스포츠클럽 활동 경력은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반영해려 해도 기록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년부터 이 내용을 입력하게 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올해 고3은 입력된 자료가 부실할이지 모르나 1,2학년은 충실히만 기록하면 얘들이 대학갈 때 생활기록부에 제법 많은 내용이 담겨져서 쓸만한 내용들로 채워질 수 있을 겁니다. - - - ”

 

내가 이런 말은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표면적으로 체육활동 경력이 어떤 방법으로든 입시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생활기록부에 체육활동 경력을 입력하고 이 내용이 상급학교 입시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하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다. 국영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 때문에 체육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건강이나 삶이 피폐하게 되는 원인이 입시제도 탓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주장을 할 때, 어떤 이는 체육마저 입시도구화 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혹은 짐)을 지워주는 것이라느니, 체육교과 나름의 목표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입시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학교에서 주변화되어 버리는 현상을 20년 이상을 보아왔기에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게 어떻게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느냐, 오히려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부담이나 짐이 아니라 적어도 심신을 단련하고 정서를 키우며 삶의 활력소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로 반론을 폈다.

 

내가 이런 주장을 공식적으로 한 것은 2007년도 국회에서 ‘학교스포츠클럽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을 때 토론자로 나가면서 부터다.(첨부한 자료가 그때 자료집이다.) 이후 2008년 근무하던 여의도중학교에 이주호장관(당시에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방문했을 때도 체육활동 경력이나 내용이 상급학교 입시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고,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자리에서 이 주장을 해댔다.

 

그리고 작년 2011년 8월 교과부는 학교스포츠클럽 활동경력을 생활기록부에 입력하라는 공문을 전국의 학교에 보냈다.

 

이제 학생들은 스포츠클럽 활동을 할 경우 매년 어떤 운동을 몇 시간이나 했는지 기록이 남게 되었다. 그 기록이 대학에서 쓰든지 안쓰든지 여부는 대학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적어도 입학사정관들이 눈여겨 볼만한 체육관련 자료는 생긴 것이다.

 

내가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해서 이 제도가 만들어 졌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이 글의 본론은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게된 배경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입시와 관련없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학교운영, 학부모들의 관심, 학생들의 생활에서 부차적으로 밀려나고 오로지 입시와 관련있는 것만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는 현실에서 아이들의 생활을 체육과 관련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만든 이주호장관이나 교과부 관료들의 생각도 아마 나와 비슷했기에 이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결국 입시문제였던 것이다. 체육도 입시와 관련을 맺어 살아남길 바랄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시현실. 그럼 이제 이번에 본 책의 주제인 한국 입시에 대해 살펴보자.

 

 

수능시험 날이면 "모든 항공기의 운항과 이착륙이 금지된다. 자동차, 버스 등 운송 수단의 경적이 금지된다. 군의 포격 등 사격 훈련도 금지된다. 공무원 등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진다. 경찰차, 구급차, 관공서 차량 등이 수송 작전에 투입된다. 지하철과 버스의 운행 횟수를 늘린다."

 

한국의 초중고등학생들의 학력은 국제학업성취도비교(PISA), 국제수학과학능력평가(TIMSS)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는 전 세계 대학에서 그 전례가 없는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즉 세계 최상위권의 인재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서울대는 한마디로 한국 최고 인재들의 집합소다. 서울대에 가면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일 뿐 국제적인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일까? 세계적인 대학자는 없고, 희대의 논문 조작이 있을 뿐이다.

 

지은이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에서 그 문제점을 찾는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고등학교 수업은 시간 때우기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 교육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경쟁은 끝난다. 가능한 높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공부를 시작하고 제대로 경쟁해야 할 대학에서는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 교육은 토론식이나 논술식이 아닌 주입식 교육과 '찍기'의 객관식 시험이 중심을 이룬다. 학교나 교사 모두 논술식 교육을 진행할 준비와 능력도 부족하지만, 채점에 대한 시비 때문에 정답이 명백하게 있는 단답형 시험을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의 논술고사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를 흉내낸 것이긴 하지만 전혀 번지수가 틀렸다. 한국 논술은 “말이 주관식 서술형 또는 논술형이지 사실은 객관식이다. 아니면 주관식의 형태를 띠고 있는 객관식이다.” 왜냐?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처럼 자유롭고 주관적인 사유를 함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강의시간에 적은 내용을 달달 외어서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충실히 베껴내느냐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에는 ‘정답’이 없다.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얼마나 창의적·합리적으로 펼쳐가느냐를 살피는 평가방식이기 때문에 정해진 답이 있을 리 없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선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문제가 출제된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는 과정 자체 즉, 논증 방식과 절차 그리고 사유의 참신성과 독창성 등이 답일 것이다.

 

서울대 등 이른바 한국 ‘명문대학’들이 생각하는 논술시험은 ‘정답’을 설정하고 소수점 아래 수치까지 점수를 매겨 눈곱만한 차이라도 만들어내 등수를 매기는 것이다. 대단한 듯 얘기하는 ‘변별력’이라는 것도 결국 그 눈곱 차이를 근거로 줄을 세우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논술, 통합 교과형 논술 시험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들이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워 기존의 대학 서열을 공고히 하기 위한, 그래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학의 자율성이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느니, 아니면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느니, 그리고 이는 국제적 경향이니 하는 것은 그저 변명이요 허위의식이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대학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국가, 국민, 사회 등 거창한 이름으로 감추고 있다.

 

 

(17)

한국의 학교는 학생들의 상활과 활동 및 노력 등 모든 것이 가능한 한 경쟁자들보다 높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총체적으로 감시하는 사회제도이다. 이 감시의 결과는 시험을 통해서 숫자로 환산된다. 시험은 전교생을 1등부터 꼴등까지 일사분란하게 배열한다.

 

(30)

그러나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면 옷이 구현하는 개인적 차원은 사라지고 오직 사회적 논리만이 남는다. 그것은 모든 구성원들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논리이다.

 

(34-35)

- - -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의 집합체’가 - - -

예컨대 대한축구협회가 지난 2004년 5월말에 한국 청소년대표팀(16세 이하)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력 및 메디컬 테스트를 한 결과를 보면, 선수 29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선수들이 과사용증후군(근육, 인대, 관절 이상)과 과훈련증후군(심장 박동 이상, 몸의 산성화)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30퍼센트 정도는 지나친 훈련으로 성장에 장애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 -

- - - 한국의 체육계는 국제대회를 대비해 국가적 차원에서 선수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감옥을 운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릉선수촌이다. - - -

이처럼 한국의 스포츠가 성적 위주의 지나친 훈련을 통해 쉼없이 뛰는 조그마한 선수들을 양산하듯이, 한국으니 교육은 전 사회적 차원에서 입시만을 위해 쉼없이 뛰는 조그마한 선수들을 양산한다.

 

(54)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현상은 학벌사회에 내재하는 모순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설명이 될 것이다. 학벌사회에서 교사는 더 이상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입시에서 낙오자가 되고 그래서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학생들은 좌절감을 겪으며 이를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키워갈 수 있다. 바로 이런 심리상태가 폭력적인 공격으로 표출되는 것인데, 이는 비단 교사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낙오자와 패배자로 만든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미 중학교부터 학생들이 성적순으로 위계 서열화된다면 암기력과 인내력이 부족해서든 가정이 어려워 학습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서든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 하위권이라는 이름의 ‘천민’이 된 학생은 과연 자신을 폭력적으로 하위에 배치시킨 체제를 두고 복수욕을 불태우지 않겠는가? 물론 친구들에게(또는 교사들에게-지은이) 주먹을 휘둘러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이지만, 낙오자·하위자의 복수욕을 키운 것도, 학교 현실 속의 체벌과 텔레비전의 온갖 폭력적 영상들을 통해 그 복수방법을 가르쳐 준 것도 바로 이 사회다.

 

(56-57)

2007년 4월 16일 미국 - - 버지니아공대 영문학과 4학년 조승희 - - - 두 정의 권총으로 최소 200발을 난사해 32명의 무고한 사람들의 - - -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마치 한국인이 범인인 것처럼 반응했다. 그들은 부끄러워했으며 미국 사회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민족주의적 반응을 보였다.

 

(66-67)

바칼로레아

- 진리는 인간을 구속하는가, 자유롭게 하는가?

- 지금은 나의 과거의 총합인가?

-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 예술작품의 복제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 계산, 그그서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 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하는 것을 뜻하는가?

 

한국의 학교교육은 토론식이나 논술식과는 다른 본질적으로 다른 주입식으로 이루어지고, 시험 역히 이른바 ‘찍기식’인 선다형 객관식이 주조를 이룬다. 주관식 역시 객관식과 다를 바 없는 단답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나 교사들 모두 토론식과 논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시험을 치를 준비와 능력도 없지만, 채점에 대한 시비 때문에 정답이 명백히 주어지는 단답형 시험을 벗어날 수 없다.

 

(70)

독일의 아비투어는 어떠한 경우에도 학생을 가르친 교사가 평가한다. 그러니까 독일의 경우에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가르친 주체와 평가하는 주체가 동일한 셈이 된다. 대학가 교수들이 개입할 여지는 조금도 없다. 김나지움은 철저하게 교사들의 영역이요 그들의 책임 아래에 있다. 마치 대학들이 교수들의 영역이요 책임아래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인 것이다.

 

(80)한국의 교육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입시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서열화에 있다.

 

(99)

[중앙일보]를 비롯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보수 언론은 한결같이 고교 평준화를 극력 반대해왔다. 고교 평준화는 하향평준화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 한국의 대학들은 외국의 유수한 대학들과 경쟁할 수 없게 되어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은 무한경쟁 시대에 생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고교평준화를 반대하는 주된 논리이다. 그래서 본고사 및 기여입학제와 더불어 이른바 ‘삼불(三不)정책을 구성하는 고교 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115)

옥스퍼드 대학 엑스터 칼리지의 프란세스 캐린크로스 학장은 국·공립과 사립고등학교 간 학업차이는 면접시험 성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캐린크로스 학장은 “수험생을 인터뷰하는 교수는 절대 학생이 배운 내용에서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을 질문을 던져 학생의 숨겨진 능력과 학업에 대한 열정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내신이나 수능 또는 논술에서 1점이라도 더 받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잠재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현실은 잠재적인 능력은 뛰어나더라도 교육여건과 환경이 나빠 이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학은 학생들의 점수를 따져서 신입생을 선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잠재력을 평가해서 신입생을 선발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세계적인 명문대학들이 본고사 대신 복잡한 다면평가를 통해서 학생을 선발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그들은 “한 차례 시험으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없으며 창의적이고 대양한 대학 문화를 만들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 - 줄 세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132)

- - -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초등고등학교는 대학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공교육은 사교육의 시녀로 전락했다. 초중고등학교는 오로지 대학 입시만을 위해 존립하고 - - -

 

(137-138)

이미 오래전부터 명문대 인기학과 합격생을 얼마나 배출하느냐에 따라서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서열과 가치가 매겨지고, 한국의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명문대 인기학과 합격생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배출시킨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 -

한국에서는 대학 이전의 학교교육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리고 지녀서도 안된다. 만일 거기에 일말의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면 학생들에게 공부 이외에도 그 시기의 인간적 성장과 발전에 적합한 여러 가지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 프로그램과 활동을 허용해야 한다. 전인교육 또는 인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입시라는 무한경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

- - -

한국에서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이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교육도 끝나는 진풍경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수능 이후의 수업은 그저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마지못해 이루어지는 ‘시간때우기’일 뿐다. 그것은 한마디로 파행수업이다.

 

(151)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해 사법고시에 합격해도 사교육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사법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또다시 학원에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179)

천신만고 끝에 입시 지옥, 또는 달리 말하자면 죽음의 삼각지대, 아니 죽음의 오각지대를 벗어나 들어간 대학은 애초부터 토론을 위한 공간과 제도가 아니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라면 대학은 당연히 토론의 장일 것이다. - - - 너무나 비상식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준비운동 단계에서 게임을 다해 버린다. - - - 선수는 이미 탈진할 대로 탈진한 상태이다.

- - -

석박사 과정도 다르지 않다. - - - 세미나식 수업이 그것이다. - - - 이미 어린 시절부터 주입식교육으로 인해 일방적인 전달과 암기가 고착된 한국의 학생들은 세미나식 수업을 소화해낼 의지도 능력도 없다. - - -

한국의 대학들은 고등학교의 학력이 저하되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신입생들의 기초 학력이 부족해 전공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학이 이와같은 똑같은 불평을 기업으로부터 듣는다는 사실이다. 즉 쓸만한 인력을 길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관련 중견기업인 A사는 - - - 학부만을 마친 대졸사업은 전공지식이 빈약해 쓸모가 없었다. 결국 당초 계획의 절반밖에 뽑지 못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5년 대학의 경제요구 부합도’ 조사에서 한국은 60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52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한국의 대학이 이렇게 된 이유는 전공 교육을 시키지 못할 정도로 대학 신입생의 기초학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그러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컨대 한국 초중고교생의 학력은 OECD회원국의 국제학업성취도비교(PISA)와 국제수학과학학력평가(TMSS)에서 영역마다 1~4위를 할 정도로 놓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영락없이 범재가 되어 나온다.

 

(230-231)

근대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다양성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획일성이 지배하면 다양성은 질식되고, 그 결과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아니 제대로 기능조차 하기 힘들다. 똑같은 가치, 규범, 관점, 견해, 지식 및 정보를 가지고는 문제를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며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없다. 특히 미래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이에 필요한 수단이나 절차를 제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과 집단은 다름과 차이를 통해 서로에게 의미를 지니고 의존한다. 모두가 다 똑같다면 굳이 상호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할 이유가 없다. - - -

다양성의 논리는 비단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계 역시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확일성이 지배하면 어떤 종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데 더 위험할 수 있다. - - -

 

1986년 거대한 태풍이 유럽을 휩쓸었다. 태풍은 풍부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유럽의 숲들을 파괴했다. 영국은 140만그루 - - - 독일의 산림청 직원들은 왜 그토록 나무가 쓰러졌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숲으로 달려갔다. - - - 다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은 바람이 불자 수백그루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그렇게 네다섯 번 허리가 꺾인 나무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한꺼번에 심었기 때문에 똑같은 수종에 크기도 같아서 똑같이 바람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을 관찰한 직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폭풍이 불자 수종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나무들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흔들렸다. 어린 나무가 먼저 휘고, 다음엔 조금 더 큰 나무, - - - 그러면서 서로 다른 속도로 서로에게 부딪쳤다. 서로를 상하게 할 것 같은 그 부딪침이 오히려 바람을 여러 방향으로 흩뜨리는 역할을 해 폭풍의 힘을 꺾어 버렸다.

숲이 보여주는 지혜는 우리 삶에도 적용된다. 서로 다른 인종이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사는 것은 자연스럽다. 좁게는 한 가족 안에서도 각자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것이 자연스럽다. 아무리 치명적인 병에 걸린 사람도 이겨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몸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제된 개체는 아무리 우수할 지라도 모두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 하나에도 전멸할 수 있다. 이것이 생물학자들이 복제가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유전학자들은 생물종이 단성생식이 아니라 양성생식을 선택하는 이유를 다양성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즉 양성생식은 단성생식보다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서로 다른 유전자를 결합함으로써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능력을 증가하려는 생물학적수단이자 절차라는 것이다.

- - -

그렇다면 한국의 엘치트 집단은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들도 쉼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인데,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무엇보다도 정답을 찾는 일을 한다. 그들이 20년 넘게 배운 것이라고는 정답 찾기이기 때문에 그렇다. 누구보다도 정답을 잘 찾는 사람들이 엘리트가 된다. 한국의 엘리트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정답을 제시하는 것을 첫째가는 임무로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정답을 찾아 헤매는 사회이다.

 

(264-267)

시험의 결과는 점수로 계량화된다. 이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초등학교 시험부터 가장 높은 단계의 고등고시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는 논리이다.

- - -

한국의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치르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 내신성적과 내학수학능력시험에 의존하는 평가방식의 보완이다. 내신성적이 고교간 학력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수능의 변별력이 의문시되기 때문에 논술고사를 통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상응해 논술고사는 기본적으로 객관식으로 이루어지는 내신이나 수능과는 달리 주관식으로 출제된다.

그런데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대학이 그토록 의미를 부여하는 논술의 평가 방식이 객관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즉 논술시험 역시 철저하게 점수로 계량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려대는 2006년 4월 7일 전국 고교생 905명(인문계 498명, 자연계 407명)을 대상으로 모의 논술고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를 보면 응시자들의 평균점수는 인문계 64.25점, 자연계 65.24점으로 채점되었다. 그리고 - - -

그런데 인간의 지적 능력을 어떻게 매 문제마다 정답을 고르는 일정한 점수를 부가해 시험의 전체적인 결과를 0점부터 100점까지의 산술적인 점수로 계량화하는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논술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아니 정답이 있는 시험의 부정적인 폐단을 극복하는데 논술 시험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주관적이고 자율적이며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사유하는 능력이다.

- - -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도입한 취지는 내신과 수능의 폐단을 보완하는 데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보완이 문제이다. 즉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통해 보완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내신과 수능으로서는 측정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창의성과 사고력의 평가가 절대 아니다.

그 정반대로 내신과 수능으로는 대학들의 성에 찰만큼 제대로 줄을 세울 수 없는 학생들을 보다 더 확실하게 일렬로 늘어세우는 데에 보완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한두 번의 시험과 평가로 일사분란한 서열이 가려지지 않으면 세 번, 아니 네 번이라도 시험을 보고 평가를 해야 한다. 1점 차이로 가려지지 않는 등수는 0.1점 차이로, 아니 0.01점 차이로라도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

 

(269)

물론 이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밝힐 수 있는 정답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무한하다. 그리고 정답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논증의 전제 조건, 논증이 준거하는 원칙과 이론 또는 가설, 논증의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에 따라서 전혀 상반된 답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른바 주관식 시험이 존재한다. 주관식 시험에서 중요시되는 점은 무엇이 정답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얼마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논리 전개에 입각해 이를 입증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아니 주관식 시험에서는 정답을 요구하지도 않고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굳이 정답을 찾자면 논증 과정 그 자체가 정답이다.

 

(272-273)

객관식 시험은 유아기 단계의 정신적 능력에 해당한다. 유아기에 인간은 이 세상에는 ‘정답’이 있고 ‘오답’이 있다는 식으로 주변의 환경과 사물을 지각하면서 성장한다. 이를테면 유아는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배운다. 그렇지 않으면 성장은 커녕 생존하기조차 힘들다. - - - 그러다가 자라며 서서히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면서 주관적인 ‘세계상’을 정립하게 된다. 이른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 - -

객관식 시험은 언제나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강요함으로써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범주화하는 흑백논리를 키우기 쉽다. 한국 사회에서는 ‘빨갱이’이니 ‘이단’이라 하는 흑백논리를 아주 쉽게 접한다. 물론 이 둘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치적 경험과 종교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빨갱이’와 ‘이단’과 같은 흑백논리의 형성에 교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또는 우리, 즉 ‘정답’을 고른 개인이나 집단은 너 또는 너희, 즉 ‘오답’을 고른 개인이나 집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답’은 선한 것이요 ‘오답’은 악한 것이다. 둘이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둘 사이에 접점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정답’과 ‘오답’은 논의나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객관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 - -

아무튼 이 세상에는 언제나 명백한 정답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객관식 시험을 기본 골격으로 하는 한국의 교육은 지금까지 획일적이고 일방적이며, 또한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인식과 사고 및 행위를 하는 인간유형을 양산해왔다. 이러한 인간유형은 창조적인 인식과 사고 그리고 자율적인 행위의 의지와 능력이 전무하다.

 

(281)

1982년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포틀랜드 전쟁을 할 때 BBC는 영국군을 ‘우리 군’이 아닌 ‘영국군’이라고 표현했다. 마거릿 대처 총리가 화가 나서 시정을 요구했으나 BBC는 “우리 방송은 영국 국민 뿐만아니라 전 세계인이 시청한다. 심지어 아르헨티나 국민도 보는 방송에서 어떻게 ‘우리 군’이라고 할 수 있느냐”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전쟁 상황에서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해도 시원찮을 판에, 더구나 공영방송이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BBC의 시선이 영국을 넘어 이미 세계로 향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결과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고 권위있는 방송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286-287)

정답 찾기는 그만하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더불어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축을 형성하는 양자역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1885-1962)의 다음과 같은 학창시절 에피소드는 이 점에서 커다란 함의를 지닌다.

 

덴마크의 한 대학에서 물리학 시험 답안을 두고 교수와 학생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기압계로 고층 건물 높이를 재는 방법을 묻는 문제에 학생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뒤 그 길이를 재면되다”고 답한 것이었다.

중재를 맡은 다른 교수는 그 학생에게 “6분을 줄테니 물리학 지식을 이용한 답을 써 내라”고 했다.

학생이 다시 써낸 답은 기압계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아래로 떨어뜨린 후 낙하시간을 재 “낙하거리=1/2(중력가속도X낙하시간의 제곱)”공식에 따라 높이를 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0점을 주장한 교수는 이에 높은 점수를 줬다. 중재를 맡은 교수는 또다른 답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옥상에서 바닥에 닿도록 긴 줄에 기압계를 추처럼 매달아 흔들어 그 진동주기를 통해 건물 높이를 알 수 있다”는 등 대여섯가지 답을 제시해 교수를 놀라게 했다.

원래 문제의 출제 의도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이 낮아지는 원리를 이용, 기압계로 지면과 건물 옥상의 기압차를 측정해 건물의 높이를 구하는 것이었다.(우리가 사용하는 고도계도 이런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은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늘 같은 답만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그 학생이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보어이다. 보어가 당시 생각해낸 답 중에 가장 만족한 것은 “기압계를 건물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였다.

- - -

사유의 자율성, 이것이야말로 성숙하고 자유롭고 근대적 인간의 정신세계의 기본적인 특징이자 전제 조건이다.

 

 

머리말 : '입시 공화국'의 종말을 생각하며_4

 

1장 인재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01. 감옥에서 인간을 기르다_15

02.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을 기르는 교육_32

03. 공교육 체벌과 사교육 체벌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_47

04. 바칼로레아, 아비투어 그리고 한국의 논술_60

 

2장 왜 그들은 명문고에 집착하는가

05.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불평등_85

06. 명문고 부활에 얽힌 숨은 뜻_95

07. 이것이 진정한 고교 등급제이다_104

 

3장 본말이 뒤바뀐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08.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한국 교육_119

09. 초·중·고등학교는 대학의 식민지인가_131

10. 사교육은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_145

11. 전도된 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_159

 

4장 세계적인 명문 대학의 탄생은 불가능한가

12. 국제 경쟁력을 외치는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_187

13. 교육과 시험이 잠재적 표절자를 키운다_205

14. 아주 낯선 대학 수업 풍경_215

 

5장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

15. 왜 한국의 엘리트는 허약한가_227

16.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로막는 교육_254

17. 정답 없는 문제가 인재를 키운다_263

 

맺음말 : '인재'를 기르려면 '인재 이데올로기'를 버려라_288

주_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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