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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국 외교관의 눈으로 보다 (백범흠)

넷볼러 2013.05.19 01:26 Views :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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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관의 눈으로 보다, 백범흠, 늘품플러스, 2010, 17,800원.

  

 

한마디로, 제목만 보고는 ‘읽지 말아야 할 책’이다.

아니면, 출판사여 제목을 바꾸어라.

‘외교관의 눈으로 본 중국’이라고 제목을 달았으면 중국의 정치 외교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게 정상이어야 하는데, 중국의 역사만 나온다.

그냥 단순한 중국 역사 3천년을 시간대로 정리한 책에 불과하다.

제목만 보고 선뜻 잡았다가는 낚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분류도 '역사'로 했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역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저 통상적인 내용에 불과한 수준이다.

다만 한 가지 중국의 역사에 대한 사실적 서술을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나열하고 있는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

 

 

(29-32)

중국은 절대다수 민족인 한족을 포함한 56개 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다문화 국가이다. 중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현재의 지배민족인 한족이 아닌 선비족, 만주족, 몽골족 등 소수민족들이 오늘날의 광대한 영토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중국 문명은 황하 문명을 근간으로 요하 문명, 양자강 하류의 하모도 문화, 양자강 상류인 민강 유역의 삼성퇴 문화, 금사 문화와 흉노, 선비, 돌궐, 몽골, 만주, 티베트, 위구르 문화 등을 흡수, 융합하여 발전해온 이질혼합의 문명이다.

 

(62)

과도한 팽창이 조기 해체를 야기한 것은 수나라,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 일본제국, 소련을 비롯한 국가들뿐 아니라, 대우와 쌍용, 진로 등 우리나라의 기업들의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68)

문자는 갑골에만 기록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나무와 비단 등에 더 많이 씌어졌다. 드넓은 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중국인들은 갑골문자에서 발전한 표의문자인 한자를 사용하여, 큰 문제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자는 표음문자인 한글이나 라틴문자, 키릴문자 등과는 달리 같은 글자를 놓고 발음은 다르게 하더라도 의미가 바뀌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자子]를 [dja;], [tse] 등으로 각기 다르게 발음하더라도 [아들]이라는 뜻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광뚱어나 푸젠어, 하카어와 같이 표준말인 북경어와는 사실상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중국인라도 한자를 사용하게 되면 문자를 갖고 의사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자는 중국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

 

(85)

제자백가 사상의 특징은 인간중심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실참여를 통한 자아의 실현에 있었다. 그들은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학문을 했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과 직접 관련된 정치와 윤리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사상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아이사의 사상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아시아의 사상이 서양과 달리 종교적 색채가 적고, 현실적인 것은 제자백가의 이러한 특징에 기인한 것이다.

 

(125-126)

중국 고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비한족非漢族 국가는 흉노이다. 흉노는 하나의 종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건국된 터키계 중심의 유목국가를 말한다. 농경민의 땅과 마찬가지로 유목민들의 땅도 통합과 분열을 반복했다. 특히 유목사회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였는데, 영명한 지도자를 추종하면 생활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목사회는 명명한 지도자가 나오면 급속히 통일되었다가도 그가 죽으면 쉽게 분열되곤 했다.

흉노는 춘추시대인 BC 7세기 남부 러시아의 킵차크 평원과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유목민족 스키타이로부터 철기鐵器를 받아들이면서부터 강성해졌다.

- - -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영향으로 흉노를 나쁘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흉匈]은 오랑캐(몽골 서부의 우량하 부족을 의미)를 뜻하고, [노奴]는 노예란 뜻으로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146-147)

- - - 이들 가운데 조조, 유비, 손권 등 세 사람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새 나라를 창업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인들은 위무제魏武帝 조조를 중국의 10대 위인으로 꼽고 있다. 이는 조조가 중국을 분열의 위기에서 구해내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아니었더라면 중국은 요동의 공손씨, 한중의 장씨, 사천의 유씨, 강남의 손씨, 하북의 원씨 등에 의해 잘게 쪼개졌을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에 100% 동감한다.

조조(155-220)는 사대부들이 멸시하던 환관 조등의 손자였다. 그는 이런 까닭도 있고 하여 문벌보다 능력을 우선시했다.

 

(162)

북방 유목민들이 생모를 제외한 아버지의 처첩이나, 형제의 처첩을 취하는 풍습을 가졌던 것은 초원지대라는 혹독한 자연환경에 기인했다. 이러한 형태의 혼인, 즉 수혼제收婚制는 첫째, 남편없는 여자들을 돌보아 주는 기능과 함께 둘째, 그들이 재혼할 경우 수반될 수밖에 없는 소와 말, 양 등 귀중한 재산의 분할을 막기 위해 나타났다. 고구려와 신라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결혼제도를 갖고 있었다.

 

(189)

문제 양견은 무천진 그룹을 대신할 새로운 지지세력을 만들기 위해 중앙관제와 지방행정제도를 개혁하고,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노예를 제외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과거의 문이 활짝 열렸다. 평민도 과거를 볼 수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의 과거제도와 다른 점이다. 과거제도의 도입은 시험성적에 의한 관리채용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문벌의 약화와 함께 황제권력의 강화를 가져왔다.

 

(204)

당나라는 한문화漢文化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으나, 황실부터가 선비족이었던 까닭에 선비적인 요소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태종은 현무문의 정변에서 살해된 친동생 이원길의 아내 양씨를 후궁으로 들였으며, 고종은 아버지 태종의 후궁이었던 무조를 아내로 삼았고, 현종은 아들인 수왕 이모의 왕비 양옥진을 빼앗아 후궁으로 삼았다. 당나라 공주들은 쉽사리 외간남자와 동침하고, 재혼·삼혼을 다반사로 하는 등 한족 귀족가문의 여성들과는 완전히 다른 행태를 보였다.

당나라는 또한 외국인이라해도 능력있는 자는 요직에 발탁하는 등 내·외국인간 차별을 두지 않았다. 흑치상지, 고선지, 이정기(이회옥), 부몽영찰 - - - 수많은 외국 출신들이 최고위 군진에 올랐다. - - - 백제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백제 왕족과 귀족들은 당나라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때 끌려간 백제인들 대부분은 당나라의 정책에 따라 요서의 건안성으로 이주당해 발해의 서진西進을 막는 역할을 맡았다. 백제인들은 당나라에 의해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단으로 이용당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261)

7년 만에 중앙아시아 원정을 끝낸 몽골군은 1232년 남송으로부터 길을 빌려 금나라의 수도 개봉으로 쳐들어갔다. 금나라의 애종哀宗은 남쪽의 채주로 달아나고, 성은 함락되었다. 금나라는 남송으로 사신을 보내어 금나라가 멸망당하고 나면 다음 차례는 남송이 될 것이니 금나라를 지원해 줄 것을 애원하였다. 남송은 조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장으로 이름난 맹공에게 2만명의 병사를 주어 몽골군과 함께 채주를 포위하게 했다. 남송은 이와는 별도로 30만석의 군량을 몽골군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1234년 1월 몽골군과 남송군의 맹공으로 성은 함락되고 애종은 자결하였다. 한나라의 군주로서 부끄럽지 않은 최후였다. 400여년 뒤 명나라 최후의 황제 의종도 자결하지만, 그는 외국군이 아니라 반란군에게 쫓기고 신하들에게 버림받은 끝에 자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인조와 고종을 필두로 고구려의 보장왕, 백재의 의자왕, 신라의 경순왕 등 어느 군주도 망국의 책임을 지고 자결한 예가 없었다는 점에서 금나라 애종은 망국의 군주로서 위엄을 지켰다.

 

(263-264)

북송의 정호·정이 형제가 시작하고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가 체계화한 성리학性理學에 의하면 “우주만물은 모두 기 氣라고 하는 균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주희는 인간의 본성은 본디 맑고 향기로우나 끝이 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뒤틀려있으므로 학문을 통해 본성, 즉 이理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성리학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 - -

성리학은 기존 질서를 존중하고 그것을 절대시하는 학문이었으므로 권력자들에 의해 종종 관학官學으로 채택되었다. 성리학은 또한 중화中華를 우주질서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중화주의의 모습으로도 나타났다. 성리학 이론에 따르면 명절이 강한 자가 기氣가 농후한 인간, 즉 문화인으로 취급되고, 중원문명 밖에 있는 자는 오랑태로 멸시를 받아야 마땅했다. 즉 성리학은, 극단적인 화이론華夷論의 기초가 된 것이다. 주희는 금나라와의 화평에 반대하였는데, 이는 야만적인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몽골도 예禮와는 거리가 먼 오랑캐이므로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남송의 조범·조규 형제의 하남 출병론부터 조선 광해군의 실각, 김상헌의 무조건적인 저항과 예송禮訟을 둘러싼 당쟁이 모두 성리학에 기초하고 있다.

주희는 교조주의자가 아니었으나, 그의 이론을 받아들인 중국의 일부 정치가들이나, 송시열과 송준길, 삼학사를 비롯한 조선 중이 이후의 서인 노론 사대부들은 심각한 성리학 교조주의자들이었다. 실학자 정약용마저 일본 성리학자의 저서를 읽고, “이제 왜인 倭人도 성인의 길을 배우니 이제 다시는 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주희는 신이었다.

 

(271-272)

몽골의 중국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은 원나라를 중국 왕조로 보고 있으나, 몽골은 몽골제국이 중국을 포함한 유라시아 각지로 팽창했다고 본다. - - - 원나라를 중국 왕조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국 역시 몽골족의 나라인 원나라 영토의 일부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민족이 중국을 점령하여 나라를 세운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중국 왕조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청나라 말기 황흥, 장병린, 추용 등 많은 한족 출신 혁명가들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국 왕조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멸만흥한滅滿興漢을 격렬하게 부르짖었다. - - - 이런 이유로 칭기스칸과 같은 몽골 팽창기의 인물이나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를 중국의 위인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299-300)

- - - 주익균, 즉 신종 만력제 시대에 일본의 조선 침공, 만주의 부상 등 동아시아의 역사를 크게 바꾸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는 아편 상습자인 동시에 향락만을 추구한 인물이었다.

만력제가 이러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임진왜란 시 그가 군대를 파병하여 일본군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우로 그를 자자손손 숭앙하였다. 1704년 송시열과 권상하 등이 만력제와 그의 손자인 숭정제를 숭앙하기 위하여 충청북도 괴산군 화양동에 세운 만동묘萬東墓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항로와 최익현을 비롯한 조선말 유생들의 골수 중화주의는 1865년 대원군에 의해 철거된 만동묘를 10년 후인 1875년에 다시 세우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1942년 일제에 의해 완전 철거된 만동묘가 최근 다시 복원되었다. 우리 사회 일각에 깊이 뿌리박힌 중화주의는 치료 불가능한 고질병으로 생각된다.

 

(332)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이자 열하일기와 허생전 등으로 유명한 박지원(1737-1805)조차도 초창기에는 자기 가문인 노론의 당론에 따라, [효종의 임금은 명나라 천자이며, (노론의 영수) 송시열은 효종에게 하듯이 명나라 천자에게 충성을 다하였고, 우리는 명나라의 유민이다.]라는 요지의 시를 지었다. 노론 출신들을 비롯한 조선의 골수 성리학자들은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과의 의리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조선 지배계층인 성리학자들의 이념이었다.

성리학자들이 중심이 된 조선 지배층은 백성들의 삶을 도외시하는 크나큰 오류를 범했다. 명·청 교체기라는 엄청난 변화 속에서 명나라와의 의리는 국익과 배치되는 이데올로기가 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사대부 유학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사대만이 유일한 외교였던 조선에 만주와 일본이라는 새로운 세력들이 나타났으며, 조선을 그 틈새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352-354)

강희제는 명나라 시절 10만명이나 되었던 환관과 궁녀의 숫자를 4백명 이하로 대폭 줄였으며,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다. 자주의 착취로부터 소작인을 보호하기 위해 토지와 소작인을 묶어 매매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흉년기에는 소작료를 감면해 주도록 했다. - - -

강희제는 한족들에게 오랑캐가 아니라 구세주였다. 민심이 따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옹정제는 내치를 한층 단단히 다져 다음 건륭제가 적극적인 외치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건륭제는 강희제와 옹정제가 남긴 막대한 흑자재정을 갖고 통치에 임했다. 건륭제는 재위 중 - - - 인근군가들에 총 10회나 원정했다. - - - 버마 원정과 베트남 원정은 군사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한 전쟁이었다. 다행히 국내외 문제를 갖고 있던 상대편이 먼저 화평을 요구하여 겨우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은 대패로 끝났다. 북베트남의 홍하전투에서 청나라 20만 대군이 완문혜가 지휘하는 베트남군 10만에게 섬멸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 - - 청나라군은 증가르 정복의 여세를 몰아 1758년 다시 출병, 산재해있던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을 모두 점령했다. 남북 신강 모두 청나라의 판도 안에 들어왔다.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다른 소수민족을 정복하여 다수민족인 한족에게 갖다 바친 예는 전무후무하다. 건륭제는 천산남북의 영토를 새로 얻은 땅이라 하여 신강이라고 이름 붙였다.

 

(434-435)

현재의 중국은 경제적·군사적으로는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했으나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의 자유, △시장경제와 같은 인류 공통의 가치체계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과거 유교가 그랬듯이, 중국이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체계를 가진 나라로 스스로 변모시켜 나갈 경우,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근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은 한층 더 커지게 될 것이다.

- - -

중국은 명나라 3대 영락제가 1421년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부터 만주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지방의 정세변화에 극도로 민간하게 되었다. 중국에 적대적인 국가가 한반도를 통일하고, 군사강국 러시아도 반중국反中國으로 돌아설 경우, 만주의 안전은 담보될 수 없으며, 이 경우 중국 전체의 안정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론 脣亡齒寒論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자국이 내란상태에 처해있던 159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1950년 6·25전쟁 시에도 한반도에 대군을 파견했다.

중국은 한반도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고 있다. 이는 동북아의 안정을 근본적으로 흔들게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문명, 그 흐름에 놓여 있는 중국의 강

상나라와 주나라

분열과 팽창

진‧한 4백년

분열과 이질혼잡의 시대

재분열과 통합

여진과 몽골의 대두

한족의 부흥과 중화주의의 확립

질풍노도의 시대

서쪽에서 부는 바람

중국 중심 동아시아 질서의 붕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가는 길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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