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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스포츠 축구는 문화다 (홍대선, 손영래)

이민표 2014.01.05 14:50 Views :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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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문화다, 홍대선 손영래, 책마루, 2010.

 

 

 

2014년은 굵직한 스포츠행사가 세 개나 있다. 소치동계올림픽, 브라질월드컵, 인천아시안게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행사들을 앞두고 매스컴에서 벌써부터 이 행사들을 때려대고 있다. 당장 한달 앞으로 다가온 소치올림픽에 대한 홍보가 대단한다. 벌써부터 금메달 후보감들에 대한 영상이 쏟아져 나온다. 김연아,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숏트랙 선수들, 이들과 함께 스키점프, 썰매선수들까지 나온다. 우파정권답다.

 

 

지난 31일 서울역앞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한 이남종씨에 대한 자살원인을 두고 경찰은 분신의 원인을 ‘빚’이라고 발표하는 등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 땅의 우파는 빨리 올림픽과 월드컵이 시작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축구는 문화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별 생각없이 손에 잡았다. 같은 집에 사는 여자가 도서관에 책 반납해야 한다는 말에 얼떨결에 운전기사로 따라서 남산도서관까지 갔다가 대출해온 것이다.

 

 

요즘에는 예전만큼 독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노안이 온 탓도 있고, 일 때문에 시간도 없고, 팟캐스트 듣느라 스마트폰 만지작 대다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빌리지 않으려 했다. 대출기간이 2주밖에 안되는 것이다. 2주 동안 두 권 읽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5권을 가져왔다. 이걸 다 읽고 반납하면 다행이지만 못읽고 갖다줘도 어쩔 수 없다.

 

 

집에 오자마자 밥먹고 바로 잡아서 읽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이다. 그런데 모처럼 만에 술술 넘어가는 책을 잡았다. 하루밤 만에 다 봤다. 딴지일보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라는데 저자들의 인문학적 지식이 탄탄하다.

 

운영자는 1998년 [축구 잘 알고 잘하기]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전국체육교사모임 동료들과 함께 월드컵을 맞이하면서 축구에 관한 책을 하나 쓰자고 해서 작업을 했는데 그 책의 1부는 내가 맡아서 집필을 했다. 그 책에서 썼던 세계 축구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여기에도 똑같이 등장한다. 그런데 당시에 내가 썼던 것보다 더 재미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브라질과 헝가리팀의 난투극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1998년에 내까 쓴 책을 보니 똑같은 내용을 묘사했음에도 당시에는 재미있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책과 비교해보니 매우 건조하게 서술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책이 많이 안팔렸나.

 

 

이 책은 현재 세계 축구를 주름잡고 있는 나라들의 축구 특성을 분석하는 방식이 흥미있다. 단순히 그 나라 축구 기술이나 전술적인 특징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그 나라의 축구가 왜 그런 특성을 갖게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저자들이 폭넓은 인문학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마을 간의 갈등이 지금까지도 연장되고 있는 영국 축구와 ‘훌리건’, 중세 도시국가들의 경쟁과 갈등이 현대축구에 그대로 재현되는 이탈리아의 세리에A, 노예노동과 열악한 시설 속에서 성장한 브라질의 ‘삼바축구’가 아닌 ‘징가축구’, 반드시 이겨서 독재에 신음하는 조국에 승리를 안겨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 아르헨티나 팀, 민족적 감정이 내재된 스페인 축구,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는 네덜란드, 축구가 오가는 항구 프랑스.

 

 

이 책을 읽다보면 현대축구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뻥축구 - 삼바축구 - 압박축구 - 패싱을 통한 점유율 축구’

 

 

21세기 들어 축구가 세계적으로 평준화되는 추세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대회가 보편화된데다 인터넷 등의 정보화와 교통통신 수단의 발달이 가장 큰 힘이다. 다른 나라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금방 전파되고 심지어 지도자들도 이리저리 옮겨다니다보니 이제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따라서 앞으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개발해서 남이 이것을 습득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14)

축구는 싸움이다. - - - 축구가 득점의 카타르시스가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원시성과 우연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폭력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축구로 인해 세계인은 하나가 되며, 월드컵은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미디어는 반복적으로 한다. 거짓말이다. 우리는 세계평화나 양국 간 화합에 기여하기 위해 한일전 경기를 보지 않는다. 축구는 싸움이다. 내가 시작한 싸움은 아니지만 싸움은 이겨야 맛이다.

축구라는 현상 자체는 선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렇지만 축구를 폭력성과 분리하려는 매스미디어의 사회적 시도는 좀 가소롭고, 괘씸하다. 그런 이야기들은 축구팬을 온순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축구에 얽힌 진짜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안주기 때문이다. 훌리건을 이해한다고 해서 훌리건이 되는 건 아니다.

 

 

(20-21)

따라서 잉글랜드인들에게 지역팀에 대한 애정은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지보다 훨씬 내밀하다. 국가대표 경기에는 열광하면서도 K-리그 관중석은 텅 비어있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2, 3부 리그가 잉글랜드 처럼 인기있는 곳은 없다. 유럽 역시 다른 대륙보다 이런 경향이 강하지만, 잉글랜드 만큼은 아니다. 잉글랜드 서포터들은 몇 대에 걸쳐 한 팀을 응원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팀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 - -

훌리건이 싸우는 이유는 그들이 갱스터이기 이전에 ‘우리’의 싸움에 동참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이다. 현대의 축구는 선수의 수와 시합 장소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패싸움에 끼지 못한 잉여전사들이 발생하게 된다. - - -

그렇다면 우리는 훌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확실한 것은 훌리건 문화의 근본을 이해하지 않고 ‘훌리건 나빠요’ 하는 건 공허하다는 게다. 리그를 지탱하는 팬과 서포터가 많은 나라일수록 훌리건도 많다. 두터운 팬 층이라는 장점은 살리고 폭력성이라는 단점은 없애고자 말하기에 장점과 단점은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장단점은 한 현상의 앞뒷면에 불과하다.

 

 

(22)

위대한 반칙

1823년 11월, 럭비스쿨, 축구시합, 웹 엘리스

 

 

(43)

70년대 들어 사회불안세력으로 지목된 스킨헤드-훌리건은 경찰의 표적이 된다. 훌리건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이전의 패선 - 파격적 헤어스타일, 전투화 형태의 가죽부츠(한때 강남에서 대유행했던 브랜드인 닥터 마틴이 대표적이다), 금속 액세서리 - 을 버리고 얌전한 옷으로 위장한다. 유순해보이면서도 쌈박질 하기에 편한 이중적인 옷차림을 추구하다보니 전혀 새로운 패션이 등장했다. 바로 우리가 ‘캐주얼’이라고 보르는 패션의 조류다.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캐주얼을 유럽에 소개했고, 유럽의 유명 브랜드들은 캐주얼을 세계에 보급시켰다. 르꼬끄 스포르티브, 버버리 라코스테, 팀버랜드, 랄프로렌, 아베크롬비 등의 의류회사는 잉글랜드 훌리건에게 많은 빚을 졌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캐주얼하게 입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전쟁터(경기장)로 출전하는 훌리건이 생각난다.

축구에 뒤틀린 욕망을 배출하는 훌리건의 전성시대는 곧 축구리그 자체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46-47)

놀랄만한 이야기지만, 잉글랜드 축구에는 순수한 의미의 ‘플레이 메이커’가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 메이커란 어느 순간 시합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뒤집는 비범함을 지닌 선수, 정확한 성황판단에 이은 날카로운 어시스트로 공을 만들어내는 선수를 말한다. 당연히 성실함 보다는 개인기와 재치를 지닌 선수가 플레이 메이커가 된다.

‘킥 앤 러시’, 즉 차놓고 열심히 달리는 스타일이 뿌리내린 잉글랜드에서는 터프하고 용맹한 선수들이 인정받아 왔다. 파워, 운동량, 스피드오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잉글랜드 축구의 철학이다.

- - -

잉글랜드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행동거지가 서투른 인종’ 취급을 받는다. 잉글랜드인들 스스로도 이를 선선히 인정한다. 아니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잉글랜드인들은 섬세함과 대립되는 강인함과 성실함, 우직함이야말로 자신들의 힘이라고 여긴다. - - - 이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플레이 메이커가 존재할 리가 없다. 일례로 잉글랜드 축구팬들이 가장 동질감을 느끼는 선수인 웨인 루니를 보자. 그는 일단 못생겼다. 어렸을 때 복싱을 배웠고 욕을 잘하며 실제 성격도 별로 좋지 않다. 단순하고 거칠게 상대 선수를 몰아붙이고, 쉴 새 없이 뛰어 다닌다. 너무나 잉글랜드적인 선수인 것이다.

 

 

(57-59)

앙골라 문화는 브라질이라는 용광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브라질 축구대표팀을 ‘삼바군단’이라고 한다. 삼바는 리듬이자 세계에서 가장 요란한 축제의 이름이고, 그네들 특유의 카오스적인 열정이기도 하다. 브라질 문화를 특징짓는 이 말은 앙골라 토속어 ‘셈바’ 혹은 ‘므셈바’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축구에 관한 한, 삼바보다 중요한 단어는 ‘징가’다. 징가는 앙골라어 ‘겡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브라질에서 복합적이고 특별한 의미를 얻게 된다. - - - 징가란 사전적으로 브라질의 전통무술 ‘카포에이라’의 기본 스텝을 뜻한다. 태권도가 기마자세, 권투가 가드 올리기로 시작된다면 카포에이라는 배우는 사람은 징가부터 시작한다.

‘징가’라는 스텝에서 카포에이라의 모든 동작이 나온다. 카포에이라는 무술이기도 하지만, 태껸처럼 춤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징가와 삼바는 형제지간이다. 카포에이라의 가장 큰 특징은 손을 가급적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춤으로써든 무술로써든, 절대적으로 발동작에 의존한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을까? 노예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두 손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손을 쓰지 못하는 대신 킥의 위력을 극대화한 무술이 카포에이라다. - - -

카포에이라는 무기를 든 착취자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생한 무술이다. - - -

- - - 카포에이라를 춤으로 만드는 것이 징가다.

징가의 뜻은 실로 다양하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으려는 방법’, ‘난관에 맞서는 적절한 몸짓’ 등을 뜻하기도 하고 ‘귀여운 거짓말’을 뜻하기도 한다. 약자가 기지를 발휘해 강자를 속여 넘기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고소한’ 쾌감도 징가에 속한다.

 

 

(73-74)

축구란 경기력에 감정이 개입되는 스포츠다. 지금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유독 강하며, 이 두 축구 강국이 가장 만나기 껄끄러워하는 상대다. 여기엔 ‘신대륙의 아픔을 공유한 이들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냐’하는 우루과이인들의 억하심정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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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브라질 사람들은 축구에 있어서만큼은 우루과이를 영원히 증오하게 되었다. 유니폼 색깔이 바뀔 정도였다. 이때까지 브라질 대표팀의 유니폼 색깔은 흰색이었다. 대회 이후 ‘우루과이에게 졌을 때의 색’을 입는 것을 굴욕으로 간주되었고, 대표팀 선수들이 흰 유니폼 착용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브라질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란 바탕에 초록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는 다른 종목의 유니폼에도 영향을 끼쳤다.

 

 

(119-121)

역사는 퇴적물이기도 하다. 누적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기독교의 기저에 무속적 기복신앙이 깔려 있는 것처럼, ‘민족국가’ 이탈리아에도 기저에는 도시 단위의 집단주의가 들끓고 있다. 축구에 있어서 국내리그가 성장할 수 있는 제1의 배경은 바로 지역감정이다. 세계 3대 리그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의 잉글랜드, 프레메라리가의 스페인, 세리에A의 이탈리아, 그런데 지역감정의 형태가 국가마다 판이하게 다르다.

잉글랜드의 지역감정은 전통적인 마을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경우 계층에 따른 거주지역으로 나뉜다. 그러다보니 거리가 가까울수록 앙숙이 많다. 스페인의 경우 종족 단위로 되어 있다. 레일 마드리드는 카스티야족의, FC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팀이다. 이천수가 잠깐 뛰었던 에알 소시에다드는 바스크족의 팀이다. 반면 이탈리아의 지역감정은 도시 단위로 갈린다. 이는 도시국가의 지리적 역사와 거의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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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에서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지 않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 서로 복작복작 붙어 있는 도시국가에서 본진이 털리는 것은 곧 멸망을 뜻한다. 꼭 역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승부에 대한 집착이 어느 선을 넘게 되면, 이겼을 때의 쾌감보다 졌을 때의 절망감이 더 커지게 된다. 이탈리아 축구가 그렇다. ‘이기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 그리고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 비겨야 한다’는 마음, 이것이 사상 최악의 수비전술로 통하는 일명 ‘카테나치오’의 심리적 배경이다.

 

 

(122-123)

카테나치오는 이탈리아어로 ‘빗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작 카테나치오를 완성한 사람은 아탈리아인이 아니다. 1960년대 카테나치오를 완성한 엘레니오 에레라의 국적은 프랑스였는데, 그렇다고 프랑스인이라고 부르기엔 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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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테나치오의 창시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칼 라판 감독이다. 그가 발명한 ‘볼트 시스템’이 카테나치오의 기원이다. 볼트 시스템에서는 수비라인 뒤에 ‘베로우어’라는 수비적인 선수가 포진한다. 에레라는 이 베로우어를 특별한 포지션으로 진화시키면서 화룡정점의 마침표를 찍는다. 바로 ‘스위퍼’ 혹은 ‘리베로’다.

수비수들의 숫자와 위치만으로는 완벽봉쇄라는 모토에 2% 부족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한 명의 키 플레이어다. 이 선수를 스위퍼, 리베로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4-3-3 포메이션으로 선수를 깔아놓는다. 하지만 중원의 셋 중 둘은 언제든 수비에 가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때에 따라서 6-1-3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까지는 극도로 수비적인 경기방식일 뿐 카테나치오가 아니다.

카테나치오는 스위퍼에 의해 완성된다. 스위퍼는 수비라인 뒤에서 어슬렁 거리며 상대 공격수의 동태를 파악한다. 상대 공격수가 1차 수비벽을 돌파하면, 그의 위치와 루트를 추적하던 스위퍼가 나타나 상대 선수의 공을 말 그래도 '스윕(sweep)', 즉 치워버리는 것이다. (스위퍼는 청소부라는 뜻), 말하자면 스위퍼 한 명을 이용해 가상의 2차 수비라인을 만드는 전술이다.

 

 

(137)

잉글랜드의 훌리건들은 홈에선 비교적 양순하지만 타지에 나가면 굉장히 거칠어진다. 이들의 공격성은 외향적이고, 솔직한 편이다. 이탈리아 훌리건은 반대다. 적이 ‘내 바닥’에 들어오면 무슨 수를 써서든 타도해야 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한다. 거꾸로 타지에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믿는 것이다.

 

 

(153-155)

이탈리아 축구는 유럽에서 ‘공공의 적’이다. 물론 실력으로만 따져도 이탈리아 축구는 강력하다. 그러나 세리에A 팀들과 이탈리아 대표팀은 승패 여부를 떠나 싸우기 괴로운 상대다. 2002년 한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연출하며 2-1 승리를 거두었을 때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 언론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것은 사실 한국팀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공공의 적이 무너지는 모습에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피가로>지는 “이탈리아에서는 모레노 주심 때문에 비난이 난무했으나 그는 전적으로 영예로운 경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라고 했으며, 러시아의 일간신문 <이즈베티야>는 “한국팀은 정정당당하게 싸웠으며, 이탈리아팀이 진 것은 심판 때문이 아니다”, “연장 전반 퇴장 당한 이탈리아의 토티는 유럽에서도 ‘할리우드 액션을 잘 쓰기로 소문난 선수”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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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와 평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리에A는 현대 축구의 오염원이다. 그러나 나는 이탈리아 축구가 정화되길 바라지 않는다. 필드를 적시는 그 탐미적인 폭력이 사라진다면, 무척 아쉬울테니까.

 

 

(196)

아르헨티나의 시원한 기후는 선수들의 운동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잦은 드리블과 왕성한 활동량은 아르헨티나 축구의 기본이다. 브라질의 기후에서는 아르헨티나보다 움직이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한 번의 동작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창조적인 플레이가 개발되기 쉽다. 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브라질에 비해 에너지 낭비가 가능하다. 공을 잡고 많이 움직이다보니 자연히 드리블 실력도 는다.

선수들의 뛰어난 드리블 기술을 정상적인 플레이로 막기 힘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격렬한 반칙도 늘어난다. 타국 리그에서 보면 경고를 받을 만한 플레이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반칙으로 조차 선언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과거의 국제 경기에서 자국 기준으로 태클을 해, 수많은 퇴장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러한 조건들이 아르헨티나의 축구가 ‘격렬함’으로 특징지어지는 이유다.

 

 

(205)

이런 리그가 세계적인 리그로 성장할 리가 없다. 아르헨티나는 국가대표팀의 실력에 비해 리그의 수준이 낮다. 클럽팀에 대한 아르헨티나인들의 충성심은 유럽인들이나 다른 남미국가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낮은 편이다. 대신 그들은 국가대표팀을 응원한다. 이런 현상엔 독재정권의 선전도 한 몫을 했다. 정통성 없는 권력은 언제나 국민들이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에선, 국가대표만 잘 해주면 된다.

축구가 다른 사회구성요소와 함께 왜곡되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빈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페론 부부의 시대였던 4, 50년대에 아르헨티나는 외적으로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 - - 그러나 독재정치는 국내의 경제구조를 붕괴시켰다. 혼란스러운 국내정세 속에서 축구도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218)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어느 팀보다 주목받고 있었다. 마라도나 뿐만 아니라 주장 파사렐라, 지난 대회 득점왕 켐페스 - - -.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뜬금없이 조별예선 첫 경기이자 대회 개막전 상대인 벨기에에게 0-1로 패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벨기에와 맞붙은 날이 6월 14일이다. 이 날은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패배,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이다. 독재정권이 아르헨티나의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던 탓에, 국민들은 아르헨티나가 전쟁에서 이기는 줄 알고 있었다. 대표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월드컵 참가를 위해 외국 땅을 밟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된 것이다. 특히 벨기에전 하루 전날, 아르헨티나가 백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전투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선수들 모두 숙소에 틀어박혀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포클랜드 제도는 ‘아른헨티나의 독도’다. - - - 포클랜드 분쟁은 국익보다는 정권연장을 위해 필요했다. 외부의 적이 설정되면 내부를 다스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저항이 심해질수록 영국에 대한 정권의 태도가 강경해졌다. 독재정권은 책임질 수 없는 전쟁을 일으켰고, 졌다. - - - 결국 마라도나는 헝가리전에서 2골을 올린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 대회를 기다려야 했다.

 

 

(241)

- - - 언제부터인가 축구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 아르헨티나 경제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축구에 열광하는 것이 행복을 느끼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 - -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불쌍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애국심에 불타고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 아르헨티나는 국고가 바닥나 선수들이 자비를 들여 의상과 물품을 맞추고 비행기 표값 등 모든 비용을 책임졌다. 물론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자랑하는 스타들에게 그만한 돈이 무슨 대수였겠는가. 그러나 축구는 가장 국가적인 스포츠고 ‘알비셀레스테스’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그들은 그 누구보다 아르헨티나인이었다.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조금의 희망이라도 만들어주고 싶다”

부유한 스타들이지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헝그리 정신이 남달랐을 것이다., 바티스투타는 비장하게 선언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언제나 축구가 있다.”

 

 

(253-255)

티에리 앙리는 모로코의 베르베르족의 후손이다. 파리의 빈민가 출신인 앙리의 별명은 티티, ‘파리의 불량소년’을 뜻하는 말이다. 축구를 하지않았다면 유명한 갱스터가 되었을 거라는 평가를 받는 앙리가 세계적인 스타가 될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사회가 그에게 최고의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 - -

프랑스의 유소년 프로그램은 축구 이외에 학업에도 힘을 불어넣고 있다. 축구를 그만두었을 때 방황하는 일이 없도록, 또 해외 무대에 진출했을 때 관습, 문화, 언어의 차이에 당황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 - -

유소년 팀에서 자라난 선수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에 경험을 쌓기 위해 국내뿐만아니라 외국의 2부, 3부 리그로 임대되어 프로무대에 빨리 적응한다. 이것이 프랑스 축구의 일반적인 방책이다. 그러다보니 프랑스는 해외로 싱싱한 프로축구 초년생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프랑스에서 제조된 질좋은 원석에 대한 수요는 매우 높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로 계속 수출되고 있다. 한편 유럽무대를 꿈꾸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리는 곳이 바로 리게1(프랑스리그)이다. 프랑스는 축구가 오가는 항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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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릴 시세는 코트디부아르 사람의 아들이다. 패트릭 비에라는 세네갈, 말투다는 프랑스령 기니, 미켈렐레는 콩고 민주 공화국 출신이다. 중남미 출신으로 과달로프가 고향인 릴리앙 튀랑과 아르헨티나 이민 2세인 다비드 트레제게도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주장 디디에르 데샹과 비센테 리자라쥐는 둘 다 스페인의 바스크족 출신이다.

이들은 출신은 다르지만 모두 프랑스인이며, 프랑스적 사회의 혜택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강력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외국계 유망주들이 성인이 되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때부터다. 프랑스 대표팀은 유색인 선수들을 긁어 모아서 만든 팀이 아니다.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들은 스타의 위치에서 프랑스로 오지 않았다. 반대로 프랑스라는 환경이 이들을 스타로 만들어준 것이다. 이것이 프랑스 축구만의 독특한 힘이며 프랑스의 자랑거리다. 대표팀 선수들은 용병이 아니라 애국심 넘치는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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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우승이 증명한 것은 프랑스 민족의 우월함이 아니라(프랑스 민족이란 것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의 공정함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지켜왔던 시스템이 성공했다는 믿음에 열광했던 것이다.

 

 

(321)

오란냐 가문은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국민의 요구에 의해 왕가로 추대된다. 오란냐는 영어로 오렌지인데, 그래서 오렌지색이 자연스럽게 국가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 붉은색에 중독되어 있는 중국인들 빼면, 한 가지 색에 이토록 충성도가 높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오렌지는 독립의 역사를 상징하는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색이다. 또한 네덜란드인들이 자국 왕가의 자격과 도덕성을 강하게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324-326)

토털풋볼은 하나의 견고한 시스템이 될 수 없었다. 캑 레이놀즈가 구상했던 토털풋볼은, 그보다 훨씬 뛰어난 지도자였던 리누스 미헬스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 - -

에레디비지의 최상급 선수가 된 미헬스는 이때부터 국가대표팀 주장을 5회나 맡는 등 대표팀의 주력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대표팀이라고 해봐야 네덜란드 대표팀이다. 미헬스는 A매치 전 경기 패배라는 특이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출전한 대표팀간 경기 기록을 추려보면 암울하게도 4득점에 21실점. 앞서 언급했지만 ‘큰물’에서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헬스는 ‘레이놀즈표 축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58년 은퇴한 그는 아마추어팀 감독 자리를 전전하다가 65년, 드디어 친정팀 아약스의 신임감독이 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아약스를 머릿속에 오랫동안 숨겨왔던 토털풋볼의 실험실로 개조한다.

 

 

(329-331)

토탈풋볼이 경기장에서 일으키는 격렬하고 역동적인 소용돌이는 매우 화려하다. 상대에게는 문자 그대로 ‘숨막히는’ 고통을 선사하지만, 관중석에서 내려다볼 때는 극도로 아름답다. 네덜란드 축구를 가리켜 브라질 축구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축구’라고 한다. 이 아름다움은 종류가 다르다. 브라질의 아름다움은 선수 개개인의 화려한 움직임에 있다. 네덜란드의 아름다움은 팀 전체가 이루는 소용돌이에 있다.

바로 여기에 토털풋볼의, 치명적 한계라고 부를만한 특징이 있다. 소용돌이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즉 팀 전체를 유기적으로 이끄는 한명의 천재가 있어야 한다. 모든 토털풋볼이 천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토털풋볼에는 천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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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헬스 밑에서 크루이프는 위에서 설명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학습하게 된다. 특히 경기를 읽는 시야와 시시각각 동료들에게 정확한 포지션을 부여하는 능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하학’으로 불리며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스포츠 라이터 데이비드 밀러는 크루이프를 “축구화를 신은 피타고라스”라고 표현했다.

 

 

(333)

리누스 미헬스는 요즘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수비전술도 처음 사용했다. 수비수들이 약속된 타이밍에 동시에 움직여 상대의 오프사이드를 유도하는 ‘오프사이드 트랩’이 그것이다. 골키퍼가 전방에 나가 상대 공격수가 차는 공의 각도를 줄이는 방법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축구의 기본 전술이 대부분 미헬스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5)

네덜란드 출신 토털풋볼 감독들은 인재를 발견하면 정성껏 키워 제자로 만들고, 제자를 데리고 다니다 육성이 끝나면 방생하는 경향이 있다. 히딩크는 호주 대표팀을 맡은 후 호주의 주요선수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육성했다. 아드보카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마치고 이호와 김동진을 데려갔다. 이러한 특이한 풍토는 리누스 미헬스의 방식을 계승한 것이다. - - -

크루이프는 훗날 현역에서 은퇴하고 감독이 되었을 때 아약스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리고 자신이 키운 선수들을 데리고 와 FC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된다. - - - 네덜란드엔 명감독이 즐비한데, 이들은 대부분 미헬스의 직간접적인 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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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관한 방송과 글을 보면 세계축구의 지속적인 평준화 경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평준화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네덜란드의 ‘축구수출’이다. 한국의 경우만 해도 히딩크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사람이 오가는 것만으로는 수출이라 할 수 없다. 이들이 특유의 패턴으로 시스템을 이식하고 다니기에, 네덜란드는 ‘축구구출국’이 된 것이다.

 

 

(355)

네덜란드 축구는 대표팀이건 에레디비지건, 미헬스의 영향력 아래 있다. 미헬스의 제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축구판을 이끌고 있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네덜란드는 명감독 공장이다. 전술적으로나 인재 생산의 측면에서나, 미헬스는 축구의 형태를 크게 바꿔놓았다.

 

 

 

(목차)

잉글랜드 축구와 패싸움

브라질 축구는 골을 위한 댄스다

이탈리아 승부엔 결과만이 존재한다

독일 게르만 부족의 필드 침략사 

아르헨티나 축구가 전쟁과 가장 유사한 나라 

프랑스 축구가 오가는 항구 

스페인 축구는 지역감정을 먹고 자란다 

네덜란드 축구의 혁명은 오렌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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