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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선수’ 유감 (월간 최의창, 2019년 4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출범시킨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시․도 장학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혁신위원장은 “학생 선수 는 선수이기 전에 학생이고, 학습권은 메달이나 성적 등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권”이라고 하며, “학생 운동선 수의 학습권 보장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핵심가치”라고 강조하였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폭로로 점화된 한국 스포츠혁신의 불길이 들불같이 타오르는 현 시점 에서, 학교 엘리트체육과 학생 운동선수 제도에 대한 개혁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자 원천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것이 다. 체육교육전문가로서 두 손 들어 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나로서는 한 가지 유감스런 것이 있다. “학생선수”라는 표현이다. (무의식적 관례가 분명 한데) 등록된 운동선수인 학생들을 “학생선수”라는 표현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 포츠혁신위원회가 깨부수려고 하는 구습(적폐)이 그대로 보존되고 승계되는 잘못된 표현이다.  “학생선수”라는 단어는 미국에서 들어온 용어다. 1980년대 중반 대학 다닐 적에 영어책에서 “student-athlete”라는 용어 를 처음 보았으며, 교수님께서 단어 그대로 학생선수로 옮기는 것을 들었고 줄곧 나도 그렇게 썼다. 학령기에 있는 초․중․ 고등학생, 그리고 특히 대학생 운동선수들에 대한 표현으로서 꽤 적절하고 좋은 단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단어는 평범한 단어가 아니었다. 원래부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었다. 생겨난 독특한 사연이 있었다. 미국대학스포츠연맹(NCAA)이 자신들의 법적인 책임을 없애기 위해서 (마치 유전자 조작처럼) 인 위적으로 탄생시킨 “법률적 용어”였던 것이다.
 
1950년도 미국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덴버 대학의 미식축구선수였던 Ernest Nemeth가 춘계훈련 시 심각한 부상을 당했 고, 대학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자신은 대학으로부터 축구라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고용된” 직원이라고 주장했다. 학생 의 신분이 아니라 직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로부터 부상에 따른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3년 후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네메스가 직원임을 인정하였다. 네메스가 받은 지원(장학금, 기숙사, 식사 및 캠퍼스 내 직무)들은 미식축구 기 량에 근거해서 받았으므로, 미식축구를 하다 입은 부상은 당연히 직원으로서의 업무 중 발생한 상해라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NCAA는 회원 대학교들이 이 이슈와 관련해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래서 당시 NCAA 위원장이었던 Waller Byers는 “우리는 ‘학생-선수’(student-athlete)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었고, 곧 바로 모든 NCAA 규정에 꼼꼼히 반영하였다. ‘players’나 ‘athletes’같은 단어들을 의무적으로 대체하는 용어로서 해석하도록 하 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1956년 이 규정에 근거한 첫 번째 장학금을 받는 학생선수들이 생기면서 <뉴욕 타임즈>에서 중간 대시(―)를 빼고 “student athlete”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단어는 프로선수(professional athlete)가 아니라, 대학생으로서 운동선수를 겸하고 있는 선수학생들을 지칭하는  일상 언어로 쓰이게 되었다. 학생과 선수의 중간에 위치한 이런 범주를 새롭게 만듦으로써 선수들이 직원이 아니라 학생 으로 인정받도록, 그래서 회원 대학교가 중요한 의무로부터 면책될 수 있도록 법률적 보호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출생의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사용되기 시작한 시간이 오래 지났고, 또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이런 얼룩진 과거는 다 씻겨나가 버리고 그냥 중립적인 단어로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에 있어서는 아예 그냥 우리말처럼 쓰이 고 있는 중이다. 최근 스포츠개혁과 관련해 운동선수 학생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되면서 이 용어는 눈에 띄게 사용빈도 가 늘어났는데, 들어보면 이 같은 문제의식 없이 말하고 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체육 전공하는 학자나, 학교의 체육행정가나 체육교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실무자들도 이런 배경과 정확한 의미에 대 해서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진정으로 운동선수 학생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과 제도의 전면적 혁신을 희망한다면, 아무 생각없이 관습적으로 쓰이는 말들에 대한 재검토가 그 첫걸음일 것이다. 폭력, 비리, 갑질 등등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들도 모두 당연시되어버린, 무의식화 되어버린 관행들이지 않은가? “낯익은 것 낯설게 하기”가 인식전환과 현실개선의 전제조건이지 않은가?
 
스포츠교육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그 중에서 “학생선수”라는 일상어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고 좀 더 올바른 용어, 정확한 표현 찾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선수학생”이 좀 더 정확하고 올바른 표현이라고 본다. 좀 더 훌 륭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령기에 있는 우리 학생들, 공부가 아니라 운동이 본업이 되어버린 학생들을 가리키는 데에 더 적확한 기술어라고 본다(공부가 학생의 본업이라는 생각도 고정관념일 수 있지만, 지금은 이것까지 자세히 논할 때는 아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채택한 모토로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이 있다. 이 모토는 잘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져서 대체적으로 환영받고 있다. 선수들은 공부를 안 해서 문제고, 학생들은 운동을 안 해서 문제인 작금의 한국 학 교에 가장 적절한 표어로 인정받고 있다. 공부와 운동, 학생선수와 일반학생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각 대상들이 서로 채워 야 하는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드러낸다. 읽는 사람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한국 학교에서의 “학생선수”는 의미상으로도 미국 NCAA에서 의도한 그런 지위에 놓인 학생들과 흡사하다. 운동이 (거의) 본업인 미국 대학선수들처럼, 우리 초․중․고등 및 대학의 학생선수들은 정말로 운동이 본업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다. 지난 50여 년간 꾸준히 본업화되었다. 학생이라는 신분은 교육체계상 입어야만 하는 행정적 겉옷에 불과했다. 학력과 상급학교 진학자격을 갖추기 위한 형식상의 허울로서만 기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말하여, 학생선수와 일반학생의 대비는 어법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대비는 아니다. 즉, “선수학생 과 일반학생”으로, 아니면 “학생선수와 학생학자”로 대비시키는 것이 문법적으로 옳은 단어 배합이다. 우리가 어떤 한 사 람이 주업과 부업을 동시에 할 때, 주업은 뒤에 부업은 앞에 위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업의인데 소설을 쓰는 사람 은 “작가의사”, 초등교사인데 연극을 하는 사람은 “배우교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운동선수로 뛰는 학생들에 대해서 “학생선수”라고 부르는 행위는 학생은 부업이고 선수가 본업이라 는 생각을, 비록 전혀 의도하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처사다. 우리 학생들은 운동을 (부업으로) 하는 선수학생들과 운동(이라는 부업)을 하지 않는 일반학생들뿐이다. 우리 학교에는 선수가 본업이고 학생이 부업인 “학생선수”들은, 행정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상태다.
 
물론, 이상적으로, 우리는 이런 구분조차도 원하지 않으며, 이런 구별조차도 필요치 않은 상황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 냥 “학생”이지 무슨 선수학생이며 일반학생인가? 일반학생들도 스포츠클럽이나 지역리그 등에 속해서 시합을 나가면 모 두 선수로서 간주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인데 말이다. 구분이 있다면, 운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있을 뿐이다. 선수학생과 일반학생도 여전히 이 구분을 진하게 긋는 단어의 한계를 극복하진 못하지 않는가?
 
옳은 말이다. 나로서는 다만, 무엇인가 더 나아진 상태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그 상태를 묘사하는 어휘나 표현들이 그 것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마음으로 실천하는 지금의 노력들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놓치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응원 이자 격려의 차원이다. 비난이 아니라.
 
단어 하나 가지고 이런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게 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반대로, 말 한 마디 때문에 만 냥 빚이 생길 수도 있다. 인생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도 부정 못할 것이다. 단어 하나로 국민의식이 바뀔 수 있다. 최근 스포츠개혁의 담론장에서 비중 높은 단어인 “학생선수”가 가능 한 빨리 “선수학생”으로 교체되기를 희망한다. 전자는 빚을 승계하는 단어, 후자는 빚을 청산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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