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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누가 최숙현을 죽였나 / 유선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22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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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2020.7.2.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연합뉴스

 

 

“예전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난 준호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2020.7.2. 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연합뉴스 수영을 너무 좋아하지만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하는 12살 준호와 그를 가르치게 된 새 코치 광수의 이야기를 통해 ‘스포츠계의 대물림되는 폭력’ 문제를 짚은 영화 <4등> 속 대사다.

 

 

개봉 당시엔 그저 가슴을 따끔따끔하게 했던 이 대사들이 요사이 심장을 후벼 파는 절절함으로 다가왔다. 1등을 하게 만들어 주는 ‘숨은 마법’인 양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던 그 폭력의 고리가 또다시 스포츠를 사랑했던 한 젊은 선수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소속팀 감독, 팀닥터, 선배의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해 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가슴 아픈 사건에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보면, 살아생전 그가 당한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복숭아 한 개를 먹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으며, 체중 조절에 실패한 벌로 사흘간 밥을 굶어야 했다. 회식 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는 이유로 새벽 1시까지 빵 20만원어치를 강제로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는 대목은 폭력을 넘어 가히 고문의 수준이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것은 최씨가 목숨을 끊기 전 사력을 다해 여기저기에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신고를 했지만 별다른 조처가 없었고,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의 문도 두드렸지만 해결책 없이 시간만 끌었다. 경북체육회와 경주시는 합의를 권하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할 경찰도 최씨의 편은 아니었다. 누구도 자신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최씨가 느꼈을 정신적 압박과 무력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작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야 사람들은 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 “가해자를 엄벌하라”는 청원글이 올라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고, 국회에서는 ‘최숙현법’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마치 스포츠계의 폭력 문제가 최씨의 죽음으로 처음 세상에 드러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돼온 폭력의 악순환이 얼마나 질기고 길었는지를.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 폭행·성폭력 사건, 프로야구 이택근 선수의 후배 폭행 사건,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의 후배 폭행 사건, 역도 사재혁 선수의 후배 폭행 사건…. 최근 몇 년 동안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오르내린 사건만 해도 다 꼽기 어려울 정도다.

 

그때마다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 해당 종목 협회 등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씨의 죽음에서 보듯 달라진 건 없다.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

 

최숙현 선수의 유언이 된 그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죄를 따져 밝혀야 할 ‘그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첫 줄에 올라야 할 대상은 물론 그에게 폭언을 하고 폭력을 행사한 감독과 팀닥터, 선배일 것이다. 그리고 최씨의 호소를 방관하고 외면한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경기협회, 경북체육회, 경주시가 그다음일 것이다. 끝이 아니다. 성적 향상과 기강 확립이라는 명목 아래 만연한 스포츠계의 인권유린 실태를 알고도 적극적인 감시를 하지 않았던 언론과 ‘1등’에만 열광하며 그 뒤에 드리워진 폭력에 눈감았던 우리 사회도 ‘그 사람들’의 목록에 다 같이 이름을 올려야 하는 건 아닐까?

 

관련자 엄벌, 재발방지 대책, 제3의 기관에 의한 관리·감독…. 최숙현 선수의 죽음 이후 언론이 읊어대는 대책은 과거와 똑같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폭력은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범죄라는 상식이 스포츠계의 문화로 굳게 자리잡는 것이다.

 

유선희 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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