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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대통령님, 교사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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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창의인재교육포럼’을 열었습니다. 포럼의 주제는 ‘창조경제를 견인할 창의인재 양성의 방향과 과제’였습니다. ‘제1회’라는 수식어를 붙인 걸 보니 앞으로도 계속할 모양입니다. 이제 곧 창조경제의 짝인 창조교육(혹은 창의교육)의 막이 오르려나 봅니다. 여러가지 정책이 국무회의 등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시행되겠지요.

 

하지만 포럼에서 제안된 수준의 정책들로 창의교육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 교육에는 진작 창의력이 흘러넘치지 않았을까요?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도 ‘창의·인성교육’이었고 말입니다. 저는 감히 예언합니다. 앞으로 대통령님께 보고될 정책들 또한 대부분 그 취지를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창의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이 교사들의 삶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교사들에게 창의적일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교사가 새 학년에 자신이 몇 학년 무슨 과목을 담당하게 될지를 언제 알게 될 것 같습니까? 옛날에는 심지어 3월2일 아침에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 요새 좀 나아졌다 하지만 고작해야 개학하기 일주일쯤 전에 알게 됩니다. 겨우 일주일 전에야 자신이 담당할 학년이나 과목을 알게 된다면 수업에 대한 최소한도의 설계나 기획조차 어렵습니다. 자, 교사들에게 창의적일 ‘기회’가 존재할까요?

 

왜 2월 말에야 학년·과목이 배정될까요? 신규 교사 발령도 2월, 교원 전보도 2월, 교장 인사도 2월에 있으니 2월 말쯤 되어서야 학교의 교원 멤버가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정적 편의가 교육적 가치와 상충하면 무엇을 우위에 놓아야 합니까? 당연히 교육적 가치를 우위에 놓고 개선해가야 합니다. 학교는 무엇보다 ‘교육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수십년 동안 정반대로 해온 것입니다.

 

중학교 국사 교사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가르치는 김에 <난중일기>를 읽히고 이에 관한 토론을 이끌려 합니다. 시험 문항도 토론된 주제와 연관하여 출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교육부가 제정한 규칙에 의하면 석차나 평균을 매길 때 ‘학급별’이 아니라 ‘학년별’로 매겨야 합니다. 따라서 시험 문항들이 1반에서 끝반까지 똑같아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담당하는 1, 2, 3반에서 이런 수업과 평가를 하고 싶어도, 이게 가능하려면 4, 5, 6반 담당 교사와 7, 8, 9반 담당 교사가 여기에 동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동의해줄까요? 왕따를 안 당하면 다행일 겁니다!

 

우리나라 교사에게는 심지어 자기가 사용할 교과서를 자신이 선택할 권리조차 없습니다. 모든 평가 문항은 이원목적분류표라는 걸 첨부하여 교내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 제출하여 ‘사전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학교에 쏟아지는 연간 6000건의 공문 중 상당수는 교사들의 업무가 되는데, 수업 준비보다는 이 업무를 잘해야 안 찍히고 인정받고 승진도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학교는 전체적으로 교육기관이라기보다 행정기관에 가깝고, 교사는 전문가로서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확실히 창조교육은 창조경제와 유사합니다. 정부가 뭔가를 공급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생태계의 질서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교육당국의 기능을 ‘사업수행 지시’에서 ‘생태계 관리’로 시급히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창의교육이든 융합교육이든 스마트교육이든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교사들을 ‘레미제라블’의 상태에서 건져 올리지 않으면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은 불가능합니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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