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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이승욱.JPG

 

한겨례 신문 '오피니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3648.html

 

뉴질랜드에 살 때의 일이다. 주민이 삼천 명 남짓한 시골 마을에 살면서 차로 한시간 반가량 걸리는 도시로 출퇴근을 했다.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히치하이커들의 천국이라는 뉴질랜드답게 다양한 히치하이커들을 만난다. 그중 잊지 못할, 지금 다시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다.

 

어느 날 퇴근길이었나, 가방도 하나 없이 그저 허름한 평상복을 입은 남자를 한 명 태웠다. 한눈에도 선하고 평온한 그의 표정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그날 나는 그를 집으로 데려와 저녁을 같이 먹고 더 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에 적어도 쉰 살 중반쯤으로 보였으니 지금은 일흔은 되었을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서 심리학과장까지 지낸 심리학 교수였다. 어느 나라나 학문 분과를 막론하고 교수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건 연구자금이다. 많은 연구자금은 더 좋은 연구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가끔 그런 연구가 있기는 하다). 그 역시 더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연구자금 공모에 종종 응모했고, 어느 날 미 해병에서 공모한 연구가 채택되었다. 지각심리학이 전공 분야였던 그는 풍부한 연구자금으로 자신이 원했던 ‘순수’ 연구 작업을 했고 결과물을 연구자금 제공처인 미 해병에 제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연구가 미군이 생포한 포로들이나 정보를 토설하도록 해야 하는 민간인들을 효과적으로 고문하는 데 참고 자료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매를 열 대 때리더라도 몇 초 간격으로 때리거나, 또는 몇 대 때리고 얼마 뒤에 또 몇 대를 때리는 것이 고문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셈이 된 것이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돌아보니 자신의 학문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이롭게 했는지 전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직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모든 사회적 직책을 사퇴했다. 결국 그가 지금껏 해온 학문적 행위들이 자신만을 이롭게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재산을 모두 아내와 자녀에게 양도하고 외톨이에 완전한 빈털터리가 되어서 뉴질랜드까지 흘러왔다고 했다.

 

그는 일체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며, 살생은 물론 가능한 모든 인위적 활동을 자제하며 살고 있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연구를 수행했던 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났는데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뉴질랜드의 시골 중에서도 깊은 숲속에 있는 불교사찰에서 불목하니로 살고 있었다. 한두 번 그를 더 만났지만, 그는 다시 어디론가 가버렸고 나 역시 그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간의 공동체를 위해 정녕 필요한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윤리를 든다. 법과 도덕은 인간의 삶을 지키려 하지만 윤리는 인간 자체를 지키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는 윤리의 기본은 단순하다. 내 행위의 대상이 나 자신이라 할지라도 나는 계속 그 일을 할 것인가. 즉 내가 고문받는 대상이라면 심리학자인 나는 그 연구를 할 것인가, 내가 피의자라면 검사나 경찰인 나는 이렇게 조사할 것인가, 내가 내담자라면 나 같은 분석가에게 분석을 받고 싶은가.

 

의도했건 무지했건 국정원 자문 심리학자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전직 심리학 교수는 자신을 이렇게 말했다. 쳐 죽여도 시원찮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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