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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방송계는 모르는 샤프롱 / 유선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4984.html

 

 

유선희 ㅣ 문화팀장

 

 

“요즘 공연계엔 아역이 출연하는 작품에 ‘샤프롱’이 꽤 많이 도입됐어요. 부모님들이 연습실부터 대기실, 백스테이지까지 졸졸 따라다니며 아이를 관리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진일보한 셈이죠.”

 

얼마 전 뮤지컬 <보디가드>를 보러 갔다가 몇몇 공연 업계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대형 공연을 중심으로 아역배우를 돌봐주고 보호해주는 ‘샤프롱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샤프롱’(chaperon)은 과거 젊은 여성이 사교장에 나갈 때 따라가 보살펴주던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현대의 공연계에선 아역배우만 관리하는 전담 스태프를 일컫는다. 미국(브로드웨이)이나 영국(웨스트엔드) 등 선진국에선 아역배우보호법 등에 따라 오래전부터 반드시 샤프롱을 두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5~6년 전쯤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샤프롱 제도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사실 자의보단 ‘타의’에 의해서였다. 국외 오리지널 창작진이 참여해 원작 공연과 무대를 동일하게 구현하는 ‘레플리카’ 공연이 늘면서 외국 스태프들이 샤프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 담당 기자였던 2014년, 국내 초연 뮤지컬 <원스> 공연 당시 “오리지널 창작진이 ‘아역을 보살필 인력을 따로 둬야 한다’고 요구해 당황했다”는 제작사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비록 대형 공연 위주지만 이 제도는 나름 성공적으로 정착 중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나 <마틸다>처럼 다수의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경우엔 샤프롱을 6~7명까지 고용하기도 한다. 이날 관람한 <보디가드>에도 주인공 레이첼 마론의 아들 플레처로 출연하는 아역배우를 위해 샤프롱이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었다.

 

샤프롱 제도가 공연계에 끼친 영향은 크다. 샤프롱이 도입된 공연에선 아역배우의 연습은 대기시간을 포함해 절대 8시간을 넘지 않고, 연습시간 이후엔 홍보를 위한 촬영 등에 동원하는 것조차 금지되고 있단다. 신시컴퍼니의 한 관계자는 “연습·공연 기간을 포함해 약 5개월간 아역배우의 연습은 물론 숙제·공부 같은 생활 전반, 라이브 공연의 긴장감에 따른 심리 변화와 안전 문제까지 관리한다”며 “샤프롱을 선발할 때 공연 관련 경험자뿐 아니라 아동학·교육학 전공자를 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샤프롱에 관해 다소 긴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유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 토론회’에서 공개된 드라마 촬영 현장 실태가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10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61.16%나 됐고, 이로 인해 수면 부족을 겪는다는 응답이 70%에 육박했으며, 촬영장에서 욕설·외모지적·성형강요 등 인격 모독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26.7%, ‘약속된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도 28.2%에 이르렀다. “하루에 가장 오래 촬영한 건 23시간이었다. 사극을 찍는 겨울 야외촬영이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는 한 연기자의 경험담은 충격을 넘어 경악의 수준이다.

 

사실 촬영장의 아동·청소년 인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배우 허정도씨는 2018년 1월 <한겨레>에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는 불법이다’라는 기고를 통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는 아동·청소년의 노동시간을 제한함과 동시에 계약서에 구체적인 보호조항을 명시하라고 돼 있지만, 이를 지키기는커녕 알고 있는 현장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최근 불거진 교육방송 <보니하니>의 여성 청소년에 대한 폭행·성폭력 논란 역시 연장선상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국회 토론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연기자 보호를 위한 ‘전담 감독관 파견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앞서 언급한 ‘샤프롱’이 바로 유사한 제도 가운데 하나다. “샤프롱 하면 비용 문제를 떠올리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국 문화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면 샤프롱은 당연한 문화이자 제도로 정착돼야 한다”는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의 말을 방송계에서도 깊이 새겨야 할 때다.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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